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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저, 몇 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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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04 23:03:24 수정 : 2025-09-04 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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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도배된 ‘아줌마 릴스’
동안 화장법과 성형도 인기
젊음 집착하는 사회의 단면
모르는 척할 뿐… 잠재된 욕망

P가 물었다. “저 몇 살 같아요?” 대답을 잘해야 한다. 저 질문 속에는 “나 어려 보이죠?”라는 속뜻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99.999%니까. 평생 안 볼 사이라면 모르겠지만, 상대와의 관계를 고려해 적당한 립서비스가 필요함을 느낀다. 나는 실제로 느껴지는 나이보다 ‘?5’ 정도 깎아서 대답한다. 상대가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나는 말 한마디로 천 냥을 얻는다.

최근엔 “저 몇 살 같아요?” 질문이 SNS로 파고들었다. ‘아줌마 릴스(짧은 영상)’라는 이름의 밈(meme)을 통해서다. 영상은 대개 다음과 같다. ‘아무도 내 나이를 못 맞히더라고요’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에 등장한 여성이 자문자답한다. “저 몇 살 같아요? 20대?(셀프 도리도리) 50대?(다시 도리도리) 60대?(또 도리도리!) 40대지롱~(‘놀라셨죠’라는 표정의 미소)!” 그러나 놀라는 사람보다 화내는 사람이 많다. 댓글엔 “70대로 보여요!” “킹받네” “민망한 걸 본인만 모른다” 같은 조롱이 폭격처럼 쏟아진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그러거나 말거나, 유행은 지속되고 변용된다. ‘40대지만 20대 같은 코디’ ‘저 40살인데 20대 존잘남에 번따 당했잖아요’ 등의 젊음을 강조한 영상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고 이를 패러디한 영상도 속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줌마 릴스’를 올리는 이들을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거나 남들에게 관심을 사고 싶어 하는 ‘관종’(관심종자)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아줌마 릴스’에 사람들이 민망해하는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불편해하고 끝내면 될 것을 왜 민망한 감정을 느낄까. 아마도 애써 젊어 보이려 하는 ‘척’에서 기인할 것이다.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욕망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은 내 안에도 있기에, 그런 욕망을 전시하는 사람들이 나의 거울처럼 비쳐 민망한 것이다.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도 해서다.

우리 사회가 젊음에 집착하는 경향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어려 보이는 화장법이 흥하고, 거리엔 동안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성형외과 전단지가 나부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형외과 마케팅 계략처럼 보이는 ‘중안부 줄이기 열풍’이 SNS를 장악한 지도 꽤 됐다. 외모를 관리하되 예뻐지려 애쓰는 모습은 들키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은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지난해 개봉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50만 관객을 동원한 ‘서브스턴스’는 욕망을 잡으려 애쓸 때 벌어지는 일을 기괴하게 그려낸 보디 호러물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한물간 배우다. 50세가 되던 해 생일에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에어로빅 방송에서마저 퇴출당한다. 절망하는 그녀에게 누군가가 서브스턴스라는 젊어지는 약물을 제안한다. 주사 하나로 더 어리고 아름다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유혹에 엘리자베스는 약물을 주입한다. 그러자 등뼈를 가르며 ‘젊은 버전’의 ‘나(클론)’가 나온다. 세상에나! 서브스턴스의 절대 규칙 하나. 일주일 간격으로 본체인 나와 ‘다른 나’인 수(마거릿 퀄리)를 교체하는 것이다.

‘나’와 ‘또 다른 나’의 아슬아슬한 동행은 초반 얼마간 잘 지켜진다. 그러나 젊음을 무기로 스타로 떠오른 수는 늙은 원본에 거부감 느끼고, 자신의 시간을 더 늘리고자 규칙을 어기고 만다. 엘리자베스는 수의 폭압에 분노하면서도, 결국 그 폭력의 주체가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이 낳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수의 욕망은 뒤집어 말하면 엘리자베스의 욕망이기도 하니까.

‘서브스턴스’가 흥행한 이유는 젊음에 집착하다간 골로 간다는 무언의 메시지에 관객이 감흥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수가 느끼는 자기혐오에 공감해서다. 엘리자베스에게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서다. 나에게도 엘리자베스와 같은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애써 모르는 척하겠지만.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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