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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에어컨 단상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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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14 23:07:41 수정 : 2025-07-14 23: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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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록적 폭염에 설치 검토
여론 들끓어… 3만명 반대 청원
당장 선풍기 없는 구치소도 있어
이번에도 국민정서는 시기상조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던 날, 저는 하필이면 서울구치소에 있었습니다. 변호인 접견을 하러 온 의뢰인은 구치소 내부 상황에 대하여 ‘지옥 불에 산 채로 구워지는 기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연일 35도 안팎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그늘 하나 없는 구치소 마당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걸어가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사람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데 계절도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된 후, 유선전화기와 팩스, 이메일과 우편으로 수백 통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합니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에어컨도 없는 독방에 사람을 가둬놓는 것은 가혹한 인권 침해라는 항의가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에어컨이 없으면 당장 설치하라고 억지를 쓰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 민원에 대해 법무부는 교정시설 내부 설비에 관한 것은 비공개 정보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수용실에 직접 에어컨을 설치할 계획은 없다고 간략한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이름은 서울구치소이지만 실제로는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서울구치소는 독방은 물론이고 수용자 거주 구역 전체에 에어컨이 없습니다. 복도 일부와 환자가 있는 의료동, 교도관들이 근무하는 공간과 일반인 및 변호사들이 드나드는 접견 공간에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대신 독방을 포함한 모든 수용동 방에 1단부터 4단까지 조절 가능한 선풍기가 있는데, 그나마도 전기 과열 및 화재를 막기 위해 한 시간당 십 분은 켜지지 않습니다. 선풍기는 기본적으로 1인 1대가 아닌 1방 1대이며, 일부 구치소는 영치금으로 개인용 선풍기 구매를 허용하기도 하지만 허용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너무 온도가 올라가는 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수용자 전원에게 얼음 생수를 지급하기도 하는데 수용자들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특별 아이템’입니다. 얼음은 위험 물건으로 취급되어 영치나 반입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에어컨이 있는 교정시설이란 건 존재할 수 없는 걸까요? 전 세계에서 아직은 있는 나라보다는 없는 나라가 훨씬 많긴 합니다. 현대적인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은 일부 유럽 국가, 그것도 ‘복지 천국’으로 소문난 일부에 불과합니다. 가령 세계에서 가장 시설이 좋기로 정평이 난 노르웨이 구치소의 경우, TV와 냉장고가 포함된 독방이 모든 수용자에게 주어지고, 수용자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제반 시설로는 스튜디오, 체육관, 요리 교실, 공방, 산책용 삼림까지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구치소’ 아닌 ‘구캉스’ 아닌가 싶습니다. 그 외 서유럽 국가 일부 구치소 수용동에도 현대적 냉난방 시스템이 있습니다.

 

서아람 변호사

미국의 경우 연방 국가답게 주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어서 연방 수용시설이나 북부, 동부 주립 수용시설은 냉방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반면, 남부나 서부의 주립 수용시설은 형편이 매우 열악합니다. 이러한 사정은 호주나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인데, 구치소 건물 일부만 제한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하고 수용동은 선풍기만 두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입니다.

 

그나마 선풍기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이조차 없는 구치소도 많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시설이 노후한 몇몇 구치소의 일부 동은 선풍기가 설치되지 않거나 고장 난 상태여서 여름을 나기 힘들다고 합니다. 미국 텍사스주도 악명이 높은데, 교도소가 백 개 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중 대부분이 수용실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상태이고, 2023년 폭염 때 무려 41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당국은 예산 문제로 인하여 선풍기 설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동남아시아 국가들, 인도, 북한, 브라질 등 수용실에 아예 선풍기도 없는 나라들은 상당히 많이 있으며 이러한 시설에서 수감자들은 물을 적신 천을 몸에 두르거나 물을 머리에 뿌리거나 ‘수제’로 만든 부채를 써서 겨우 버틴다고 합니다. 필리핀 마닐라 퀘손 교도소는 방 하나에 적게는 서른 명, 많게는 쉰 명까지 들어가야 하는 과밀 상태인데, 누울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겹쳐져 잠을 자야 하는 데다 사시사철 열대성 기후이다 보니 일 년 내내 체감온도가 40도 이상이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필리핀 법무부 장관조차 수용시설에 대해 “안에서 사람이 증발하겠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호텔급 구치소를 운영하는 노르웨이 교정국의 경우 “수용자가 인간다운 삶을 지속해야 사회 복귀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정시설의 선진화와 현대화를 요청하는 입장에서는 온도를 포함한 건강이나 위생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아무리 구금 상태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수준으로 보장해주어야 하며 비인도적 환경에 두는 것은 단순히 징역형을 통해 자유만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국민감정은 구치소 에어컨 설치를 논하기는 시기상조인 듯합니다. 2018년 기록적 무더위가 이어지며 법무부에서 교정시설 에어컨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자 ‘수감자에게 에어컨을 주지 말라’는 국민 청원이 곧바로 제기되었고 무려 3만명 이상이 동의했던 바 있습니다. 일반 시민 중에서도 가난해서 에어컨 못 트는 사람이 많은데 수용자에게 나랏돈으로 에어컨을 틀어준다는 게 말이 되냐, 전국 50여개 수용시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데 드는 수천억원 이상의 예산은 어떻게 감당할 거냐, 구치소와 교도소를 지내기 편한 곳으로 만들어버리면 사람들이 범죄를 더 쉽게 저지르지 않겠냐 등등 우려의 목소리가 아직도 높습니다. 범죄자에 대한 처우는 국민에게 상당히 예민한 지점인 만큼, 앞으로 충분한 시간과 여론 수렴을 거쳐 신중히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너무 더운 건 맞으니 시원하게 비라도 한 번 내렸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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