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학교 폭력은 대부분 학생 간의 충돌로 끝나지 않는다. 처벌을 둘러싼 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은 이미 화해했는데, 어른들이 막대한 비용을 써가며 계속 싸우기도 한다. 이른바 ‘교육의 사법화’가 낳은 안타까운 모습이다.
학교 폭력에 대한 무리한 사법적 접근은 학생이 공동체 안에서 자율적으로 갈등을 풀고 관계를 회복하는 경험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끔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에선 이 같은 부작용이 더욱 심각하다. 저학년일수록 학교 폭력에 대한 ‘교육적 해결’이 절실하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을 ‘처벌 중심’에서 ‘관계회복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관계회복 숙려제’가 있다.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의 경미한 학교 폭력 사안에 대해 관계조정 전문가가 관계조정 프로그램 전 과정을 주도하는 제도다. 관계조정 전문가는 학생들이 진정한 사과와 화해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제도의 핵심은 학교에만 맡겨두지 않는 ‘교육청의 적극적 개입’이다. 전에는 학교가 요청해야만 지원이 이뤄졌다. 이제는 교육지원청이 사안을 직접 검토하여 학부모에게 관계조정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전문가를 연결해 준다. 이는 갈등 초기 단계부터 전문가가 개입해 맞춤형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서울 교육의 의지다.
현장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뚜렷하다. 서울 시내 한 지역에선 초등학교 학교 폭력 접수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8.4%나 감소했다. 지난해 운영된 관계조정 프로그램의 성공률은 93%,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97%를 기록했다. 한 피해 관련 학부모는 “상대 학생이 왜 그랬는지 직접 듣고 싶었는데 공식적인 대화의 장에서 상대 학생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보호자에게 부탁을 전할 수 있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가해 관련 학생은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번에 사과를 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성과가 지속 가능하려면 법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 교육적 개입이 절실한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장이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새로 마련돼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1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관련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여 전국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할 관계조정 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위한 전문 연수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문 연수를 통해 교실 내 갈등 상황에 대한 교사의 중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교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성공적인 시범운영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는 ‘관계회복 숙려제’를 서울 시내 전체 학교로 확대할 계획이다.
학교 폭력에 대한 교육적 해결은 단순히 처벌을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손쉬운 처벌 대신 ‘대화와 인정, 사과와 화해’라는 어렵지만 소중한 과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보다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겠다는 교육적 의지다. 이를 위해선 교육공동체 전체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모든 학교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따뜻하고 안전한 배움터로 거듭나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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