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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兩非論)…‘참을 수 없는 단어의 가벼움’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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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6 12:36:57 수정 : 2025-11-26 12:38:03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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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파문’ 경기도의회·경기도, 8일째 극한 갈등…삭발·단식
10년 만의 준예산 사태 위기…‘뒤죽박죽’ 예산 심의 차질 빚어
취약계층·복지사업 타격 ‘불가피’…최소비용 지출 사태 맞을 듯
‘행감 거부’ 놓고 민주당 중앙당이 도의회 민주당 ‘변화’ 이끌어
조혜진 경기도 비서실장 “양우식 의원 결자해지해야” 사퇴 촉구
시민단체 “이번 사태는 의회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아 발생”

‘양비론(兩非論)’.

 

국어사전에선 서로 충돌하는 혹은 맞서 내세우는 두 말(의견) 모두 틀렸다는 이론이나 주장을 일컫습니다. 학문적 이론이나 사회적 주장이 양분돼 있을 때, 어느 한 편에도 동의하지 않는 제삼자가 새로운 주장을 전개하는 경우에 주로 해당합니다. 

 

반대로 ‘양시론(兩是論)’은 대립하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를 모두 옳다고 하는 견해나 입장입니다. 논술시험에서 양비론과 양시론에 모두 낮은 점수를 주는 건 문제의 해법을 진지하게 찾기보다 피상적 형평성에 치중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백현종 대표의원이 25일 경기지사 비서실장과 보좌진에 대한 파면을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제공

◆ 해법 모색 막는 ‘양비론(兩非論)’…논술시험마저 낮은 점수

 

26일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야당이 ‘치킨게임’을 연상시키는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날 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인 백현종 의원(구리1)은 도의회 로비에서 삭발하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백 의원은 “연이은 도발로 도의회와 도 기능을 마비시킨 이들에게는 전원 파면만이 답”이라고 했습니다.

 

조혜진 도 비서실장과 보좌진이 지난 19일 도의회 운영위원회 행정사무감사를 거부한 것이 직접적 이유입니다. 여기에 도의 복지예산 삭감과 이른바 도내 ‘이재명 예산’(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업)이 다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조 비서실장은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양우식 의원이 위원장직에서 내려오길 촉구한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윤리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마치 무너지지 않는 권좌에나 앉은 듯 아무렇지 않게 감사를 주재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양우식 경기도의회 운영위원장. 경기도의회 제공

직원에 대한 성희롱 발언 혐의(모욕죄)로 검찰에 기소된 양우식 도의회 운영위원장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사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죠.

 

이로 인해 10년 만의 경기도 준예산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높아졌습니다. 경기도는 2015년 말 3∼5세 무상보육을 담은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여야 간 의견이 맞서 이듬해인 2016년 준예산 사태를 맞은 바 있습니다. 무려 28일간 지속했던 준예산 체제는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뒤죽박죽’, ‘점입가경’입니다. 이쯤에서 문제의 본질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문제를 바라보는 김진경 도의회 의장의 반응입니다. 전날 김 의장은 운영위 파행사태와 관련해 양 위원장과 조 비서실장의 동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모두 사퇴해야 논란이 종결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전형적인 양비론입니다.

 

김 의장은 간담회에서 “양 위원장 문제를 명분 삼아 피감기관이 출석을 거부한 건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위원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면 행감장에 출석해 의사 진행 발언으로 뜻을 밝히고 퇴장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9일 경기도의회 운영위 회의장에 들어가려다 청원경찰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전공노 제공

◆ 양우식 등 도의원 8명·11건 윤리위 회부…수개월째 심의 안 돼

 

따져봐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김 의장은 행감 거부 사태 직후 도 집행부를 향해 “지방의회 감사권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깊은 유감을 표하며 도민과 의회에 대한 김동연 지사의 즉각적인 사과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정 위원의 발언이나 의사 진행에 이견이 있다면 의회 내부의 절차와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특정 위원의 발언을 평가할 의회 내부 절차는 사실상 멈춰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윤리위에는 양 위원장을 포함해 도의원 8명에 대한 11건의 안건이 회부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수개월째 단 한 건도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윤리위원 전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한 이유입니다.

 

살짝 연상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난 2월 양 위원장은 “신문 지면 1면에 경기도의회 의장 개회사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싣지 않으면 홍보비를 제한하라”고 발언했습니다. 지역·지방지를 겨냥한 듯한 이 발언으로 양 위원장은 언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김 의장은 적극적 움직임을 띠지 않았습니다. ‘1면에 의장 개회사를 게재하라’는 주장 때문이었을까요.

 

김 의장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유호준 의원(남양주6)은 “김 의장 및 도의회 동료 의원님들께 부탁한다. 계류된 의원들 징계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한다. 우리가 만든 규칙을 우리가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집행부와 도민께 조례를 지키라고 요구하겠는가”라고 되묻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조합원들이 경기도의회 앞에서 양우식 위원장의 징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공노 제공

침묵하던 도의회 여당이 등 떠밀리듯 잇따라 성명을 내며 양 위원장에게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것도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닙니다. 도의회 민주당은 지난 5월 불거진 양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에도 이렇다 할 입장표명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심지어 일부 민주당 의원은 조 비서실장 일행의 행감 거부 직후 “신분을 망각한 비서실장이 스스로 사퇴해 책임을 지는 방법밖에 없다”며 도 집행부를 압박했습니다.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처분을 내렸습니다. 입장 표명인 셈입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모욕 혐의로 양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파행한 경기도의회 운영위. 경기도의회 제공

◆ “입을 닫는 정당…최소한의 자격조차 없어” 민주당 중앙당 논평에 ‘변화’

 

민주당 중앙당의 논평은 이 같은 도의회 민주당의 태도 변화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연 민주당 선임부대변인의 논평이 신호탄이 됐습니다.

 

김 부대변인은 지난 20일 논평을 내고 “양 의원은 위원장직을 유지한 채 행정사무감사 주재를 강행하려 했다”며 “인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당, 약자를 조롱하는 정당, 성희롱과 혐오 앞에서 입을 닫는 정당은 국민의 삶과 존엄을 책임질 최소한의 자격조차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권과 존엄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굳건히 지키며 책임 있는 정치를 이어가겠다”고 했죠.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대화하는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오른쪽). 경기도 제공

‘성희롱과 혐오 앞에서 입을 닫는 정당’이 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요. 이튿날인 21일 도의회 민주당은 김 지사 사과와 양 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이란 양비론을 담은 입장문을 냈습니다. 다시 24일에는 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양 위원장의 즉각 사퇴와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의 ‘살생부’를 쥐고 있는 중앙당이 움직이자 지역이 따라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행감장을 이탈한 조 비서실장의 행동은 경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행동이 검찰에 기소된 범죄 혐의와 같은 무게를 지닌다고 보는 건 무리입니다. 추의 무게를 고려치 않고 저울에 올린 뒤 ‘똑같이 무겁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경기여성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의회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아 발생한 사태라고 규정했습니다.

 

삭발하고 단식하는 야당 도의원의 용기를 존중합니다. 그 열정 그대로 민생예산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는 동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도의회 국민의힘이 뒤늦게 예산 의결 판단을 상임위별로 맡긴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번 예산 심의를 통해 상임위별로 이재명 대통령 사업을 샅샅이 뒤져서 파헤치겠다”는 야당 도의원들의 외침에 여당 도의원들은 답해야 합니다. 무엇이 대통령 예산이고 아닌지를 가려 진실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파면’, ‘사퇴’, ‘사과’라는 단어만 오가는 연말 도의회 풍경에 놀란 도민들의 가슴을 달래주시길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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