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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억칼럼] 론스타 승소와 ‘내란 청산 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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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4 22:43:55 수정 : 2025-11-24 22:43:55
박창억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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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에 대한 시각은 곱지 않다. ‘철밥통’이 일반적인 이미지다. 혈세로 정년이 보장되는 점을 비꼰 표현이다.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대충 요령만 피운다는 비판이다. 철밥통과 복지부동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공무원은 그야말로 ‘동네북’이다. 잘하면 본전, 조금만 잘못하면 온갖 비난에 직면한다.

‘영혼이 없다’는 비아냥에도 시달린다. 자기 소신보다는 정부 철학을 앞세워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일컫는 말이다. 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후 파격적인 정책과 인사가 잇따르며 ‘코드’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시 어느 경제관료는 “우리는 어떤 정권의 코드에도 맞출 수 있다”고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2008년 이명박정부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국정홍보처 한 간부가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말해 오랜 시간 회자가 됐다.

박창억 논설실장

최근 공무원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을 단번에 씻어내는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법무부 공무원들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소송에서 완승을 거둔 것이다. 패소 시 국고에서 지출됐을 4000억원 상당의 원금과 이자 배상 손실을 막았다. 이들은 좁은 과녁을 정확히 겨냥해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며 2022년의 일부 패소 판정을 완전히 뒤집는 쾌거를 이끌어냈다. 국제 투자분쟁에서 이번처럼 원심판결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승소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이명박정부 때 시작된 소송에 대해 윤석열정부에서 취소 소송을 결정했으며, 특히 계엄 사태 혼란과 대통령, 법무장관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소송을 진행해 거둔 성과이기 때문이다. 소송의 분수령이었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구술심리가 열렸던 올 초에는 국가리더십이 완전히 실종된 시기였으나, 우리 공무원들은 끝내 자기 소임을 완수했다.

공무원은 전문성, 조직 안정성,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과감하고 신속한 개혁을 밀어붙이는 데는 적절치 않지만 공허하거나 과격한 주장으로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를 구성할 때 교수나 시민단체 출신보다는 관료 출신이 중심에 있으면 훨씬 안정감을 준다. 공무원들은 4급 이상이면 매년 재산신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인사청문회에 등장한 장관 후보자들을 살펴보면 고위 공무원 출신들은 다른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제된 생활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국무총리실이 최근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12·3 계엄 가담 여부를 조사하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내란 청산 TF) 구성을 완료하고 본격 활동을 개시했다. 총리실은 TF 내에 ‘내란행위 제보센터’를 설치, 대면·우편·전화·이메일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한 일이다. 내란 청산은 권력 핵심부와 이에 협력한 관련자에 국한해야지, 계엄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공무원들에게까지 확대하겠다니 말이다. 당시 장관들조차 아무것도 모른 채 계엄 선포에 허둥지둥하지 않았나.

3대 특검에 대한 피로감이 이미 커지고 있는 마당이다. 전 부처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기준이 불분명한 전방위 조사까지 진행된다면 문재인정부 시절의 적폐청산과 같은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가 커진다. TF가 헌법존중을 명분으로 또 다른 보복의 장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적폐청산 시즌2’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총리실의 총괄 TF가 위촉한 외부 자문단 4명이 모두 친여권 인사라는 점부터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제보센터’는 근절해야 할 투서를 오히려 조장하고 활성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벌써 일부 부처에서는 내부 투서가 쏟아진다는 말이 들린다. 이런 식이면 공직사회는 더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이 정치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집권 세력의 책무다. ‘내란 청산 TF’ 같은 것으로 공직사회를 뒤흔들지 않아야 공무원이 제 일을 하고 ‘론스타 승소’ 같은 일이 또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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