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비례원칙 강조·해양력 강화·여론 형성을
‘남중국해 양배추 전략’이란 말이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자신들의 내해(內海)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초기에는 남중국해에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하며 인공섬을 건설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군사적 목적의 활동이 점증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표현인데 우리에게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필리핀이 남중국해에 보유하고 있는 작은 암초를 어느 순간부터 중국의 어선, 민간 선박, 해군 함정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그 결과 이 해역에 필리핀 어선의 접근이 제한되고 나아가 주권 행사도 어려워졌다. 양배추처럼 겹겹이 에워싼다는 의미에서 등장한 이 전략은, 이후 중국이 원하는 해역에서 상대 어선의 진입을 차단하거나 분쟁 해역에서 비군사선박을 먼저 배치한 후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일련의 활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전략이 서해에서도 전개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세워진 철제 구조물 때문이다. ‘한·중어업협정’에 따르면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PMZ에서는 어로 활동과 수자원 보호 활동만 가능하다. 그런데 중국은 난데없이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석유시추선을 개조한 고정형 플랫폼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은 이를 연어 양식시설이라고 설명하지만, 솔직히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사례들을 참고했을 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행보는 서해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의도는 외교적 수사(rhetoric)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행동에서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설명 그대로를 믿고 양식장이라 해도 그 수가 많으면 해상 지배력은 강화되는 것이다. 은밀하게 시작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노골적으로 이 해역에는 중국 구조물이 많으니 ‘안전상의 이유’로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할 것이다.
물론 서해는 남중국해와는 다르다.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 상황이 굳어지면 곧 중국의 권리가 된다. 특히 이동형이 아닌 고정형 구조물의 등장은 그 지역에서 일관되게 해상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중국의 영향력 행사가 강화된 것이다.
이제 공은 우리 정부에게 넘어왔고 다행히 실무급 협상이 개최된다. 한두 번의 대화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일들이 있다. 먼저 상호주의에 입각한 행동원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비례성의 원칙을 강조해야 한다. PMZ에 구조물을 건설한다면 양측이 등거리 등면적의 비례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중국이 어느 위치에 구조물을 세운다면 우리도 유사한 위치에 같은 크기로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일방적인 해상 지배력 공고화를 막을 수 있다.
다음으로 해양력을 강화해야 한다. 군사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해경, 해상 건설 역량, 외교적 협상력, 해양법 전문가 육성, 이를 위한 예산 확보 등을 총망라한 포괄적 해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국의 어떠한 전술적 행보도 능히 막아낼 ‘힘’을 갖춰야 한다.
끝으로 국민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서해 구조물 사건을 일회성으로 흘려보낸다면 결국 중국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행보를 당해낼 수 없다. 끊임없이 상황이 알려지고 여론이 형성되며 국민적 관심이 유지될 때, 미·중 경쟁 속에서 한·중 관계를 고려해야 할 중국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 중국이 은밀히 서해 구조물을 설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비자 면제를 시행하고 한한령 해제 움직임을 보이는 배경과 같은 이유다.
올해는 중국에 있어서도 한·중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에 따라 미·중 관계와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중 관계에서 상호존중의 원칙이 사라진다면 밀접한 관계를 만든다고 해도 밝은 미래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서해에서 중국 ‘양배추 전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당당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호혜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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