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고, 활짝 핀 봄은 오는 듯 오는 듯 더디 오고, 이곳 담양에도 산수유, 매화, 개나리, 목련이 피고, 피어나지만 날씨는 여전히 화창과 화사를 비껴가고…, 그래도 도시의 헤비메탈인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오늘 오전.
함께 지내는 동화작가이면서 청소년 소설가인 김하은씨가 깨끗이 씻은 돌 두 개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다. 창작촌을 지키는 카뮈(개 이름)가 선물로 준 것이라며. 좋겠다. 개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돌이나 나뭇가지를 바친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쥐나 다람쥐를 납작하게 만들어 바치듯이.

그냥 평범한 돌인데도 왠지 유난히 더 예뻐 보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부러운 맘으로 바라보며 나도 활짝 웃는다. 하은씨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딴 커피 애호가라 그녀가 타 준 커피는 천상(?)의 맛! 사람이 좋으니 카뮈도 그걸 알아보고 곧 떠날 사람인데도 제 사랑을 바치는구나. 좋다. 참 따뜻하다.
이곳에 온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건만 그동안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시 한 편도 쓰지 못하고, 슬로슬로 퀵퀵, 놀기만 한다. 활짝 핀 봄을 그리려고 왔는데 봄도 법도 나도 정말 나무늘보만큼 느리다. 그래도 힘을 내자, 달래고 다독이며 크게 기지개를 켠다. 나라의 슬픔도 사회적인 고뇌도 좀 더 참고 기도하면 언젠가는 창조적인 부글거림을 거쳐 부드러운 봄 시내가 되어 졸졸 흘러가겠지.
어딜 가나 제 욕심에 본성이 뒤틀린 사람들은 있는 법. 스스로 무엇 하나도 깨우쳐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나는 문학을 통해 나 자신을 위로하고 수리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 덕에 여하한 것에서 한 발 비켜나 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으니.
어느새 더디 더디 오는 듯하던 봄도 청운동 산책길 매화밭과 산수유밭을 향기롭게 물들여놓고, 곧 벚나무 꽃봉오리들을 펑펑 터트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 꽃망울들이 펑펑 터지면 우리 모두 환호하며 그 아래를 거닐자.
우리에게 아직도 소중한 삶이 남아 있다는 데 감사하며 너도나도 봄이 주는 은혜로운 ‘낙관주의 낭만주사’를 흔쾌히 맞자.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아름답고, 우리가 매일매일 사랑으로 함께 먹는, 함께 먹고 싶은 밥이니까. 한 마리 개조차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사랑의 선물을 건넬 줄 아는 그런 따스하고 넉넉한 사랑의 밥!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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