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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춘렬 칼럼] 中 간 이재용, 美 간 정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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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31 23:19:05 수정 : 2025-03-31 23: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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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10년 만에 시진핑 만나 광폭 행보
鄭, 트럼프 앞 4년간 31조 투자 발표
미·중 갈등 격화 속 다른 돌파구 모색
도전·혁신 DNA 깨워 승어부 길 걷길

“옛날에 삼성은 아주 정말 끝까지 파고드는 독기가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다.” 지난해 6월 초 세계적 반도체 석학 A씨는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삼성 사람들을 만나보니 오랫동안 1등 했으니 좀 즐기고 안주한다는 분위기가 읽혔고 시장에도 둔감했다고 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시장에서 뒤처진 것도, 첫 파업이 발생할 정도로 조직·인사관리가 느슨해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는 ‘설마 그 정도일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약 10개월이 흐른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이 회장은 최근 계열사 임원 교육에서 “(삼성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문제에 닥쳤다”며 “전 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이 훼손됐다”고 했다. 메모리 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며 DX 부문(TV·스마트폰)도 제품 품질이 걸맞지 않다고 질책했다. 그는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 돼달라고 주문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총수가 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각성한 거 같아 다행스럽다.

주춘렬 수석논설위원

이 회장은 독한 삼성 메시지를 던진 후 중국으로 날아갔다. 샤오미와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업체를 찾아가 전장(차량용 전자·전기장비) 협력에 공들였다. 주요 글로벌 빅테크(거대기술기업) 경영진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만났다. 두 사람의 회동은 10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후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는 시기여서 이 회장의 친중 행보에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삼성에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대중 매출은 65조원으로 전체의 31%에 달한다. 미국(61조원)보다 더 많다. 중국 사업이 망가져서는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비슷한 시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으로 달려갔다. 정 회장은 미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나 2028년까지 미국에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현대차를 향해 “대단한 기업”이라며 “관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화답했다. 미 제조업의 부흥과 일자리를 바라는 트럼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정 회장도 트럼프 관세 폭탄을 피해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확대가 불가피한 선택이다.

현대차는 사흘 뒤 미 조지아주에서 현대차 메타플랜트 공장을 완공해 미국 내 생산 100만대 체제를 갖췄다. 현대차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물량이 64만대이고 기아까지 합치면 100만대이니 미 현지화의 새 이정표라 할 만하다.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2005년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을 가동한 지 20년 만이다. 정 회장은 준공식에서 “단순히 공장을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는 통 큰 투자로 4년 내 공장 증설을 통해 미 생산규모를 120만대로 늘리고 전기로 일관제철소까지 건설하려 한다. 미 현지에서 쇳물부터 부품·배터리, 자동차 조립까지 생산하는 일괄 생산체제를 구축하자는 게 정 회장의 구상이다. 이 역시 정 명예회장이 2010년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며 국내에서 완성했던 수직 계열화와 다르지 않다. 2대에 걸친 현대차의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로 다가온 듯하다.

이 회장의 독한 삼성 메시지에도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다. 이 선대회장은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며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집약되는 신경영으로 삼성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회장은 지난 10년간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면서도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 “선대회장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도 했다. 이제 이 회장이 삼성의 도전과 혁신 DNA를 깨워 아버지를 뛰어넘는 승어부(勝於父)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다.


주춘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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