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권력 차지하는 데만 골몰
민심 경고 놓친 대가는 黨 소멸
지금 민주당도 같은 길 들어서
1972년 12월29일 밤 미국 동부항공 401편이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에 추락해 탑승자 176명 가운데 101명이 숨졌다. 대형 여객기가 늪지대로 추락한 원인은 엔진도, 날개도 아니었다. 마이애미공항 착륙을 앞두고 앞바퀴가 내려왔음을 알리는 작은 녹색 표시등이 켜지지 않은 데서 사고가 시작됐다. 앞바퀴가 접힌 채 착륙하면 기체가 활주로에 처박힐 수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 등은 전구를 빼 살피고 관측창으로 앞바퀴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실제 앞바퀴는 정상적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작은 불빛에만 매달린 사이 여객기는 서서히 고도를 잃었다. 표시등을 살피는 사람은 있었지만 여객기가 어느 높이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이는 논쟁도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따져볼 만한 사안이다. 경선 규칙은 공정해야 하고 탈당과 선거 패배의 책임도 검증할 수 있다. 청년에게 출마의 문을 얼마나 열어줄지도 가볍지 않다. 그러나 선호투표제를 놓고 지도부가 갈라졌고, 청년 최고위원제는 계파 간 이해가 엇갈리며 무산됐다. 후보 등록 직전까지 기탁금 논란도 이어졌다. 누가 유리한 규칙을 만들었고 누가 당을 떠났는지를 따지는 동안 집권 여당이 국민에게 내놓을 다음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당권 주자들의 말은 상대를 끌어내리는 데만 집중됐다. 김민석 전 국무총리는 정청래 전 대표가 다시 대표가 되면 당과 대통령, 정부가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송영길 의원은 “정청래의 얼굴로 총선을 이길 것 같으냐”고 했다. 정 전 대표는 김 전 총리의 과거 탈당을 “최악의 자기 정치”이자 해당 행위라고 맞받았고, 자신을 향한 공세는 “집단 폭행”이라고 했다. 후보들 주장만 놓고 보면 민주당에는 대표가 돼서는 안 될 사람만 수두룩하다.
전당대회라면 후보마다 성장과 복지, 주거와 세대 문제 등 민생 현안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당원과 국민의 선택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경쟁의 중심에는 정책이 아니라 상대의 과거와 자격, 계파의 이해만이 놓여 있다. 앞으로 경제와 민생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집값과 일자리·연금·교육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는 보이지 않는다.
누가 대통령을 더 잘 지킬 사람인지, 누가 민주당의 적통인지를 가리며 당권을 차지하려는 자기정치만 난무하고 있다. 과거의 충성은 거듭 복기하면서 미래의 위험은 외면하는 상황이다.
당권 주자들이 상대를 배신자와 부적격자로 몰아붙이자 강성 지지층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검찰 보완수사권을 제한적으로 남기자는 의원들은 곧바로 ‘검개 11적’으로 찍혔고, 이름과 연락처가 돌며 문자 폭탄과 탈당 요구가 이어졌다. 당권 경쟁에서 시작된 낙인 정치가 당 전체의 건전한 토론마저 가로막았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지만 개혁의 명분과 당내 노선 싸움에 빠진 사이 부동산과 민생에 대한 불만은 쌓여갔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차지한 광역단체장은 전북 한 곳뿐이었다. 이듬해 대선까지 참패하자 친노 진영에서는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불렀다. 국민이 몰아준 과반 의석을 믿고 민심의 경고를 놓친 대가는 정권 상실과 당의 소멸이었다.
지금 민주당도 같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과 높은 지지율에 취해 적통과 배신자를 가려내고, 당권 주자들은 당의 미래보다 자신의 권력을 앞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몰락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개혁 정당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52석은 민심이 돌아선 뒤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했다.
추락한 여객기 조종실에서는 모두가 표시등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객기가 추락하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민주당도 당권과 적통이라는 표시등에 매달려 있다. 당권주자들의 관심은 전당대회에서 이기고 당내 권력을 차지하는 데만 쏠려 있다. 그 사이 민생 대책은 늦어지고 집값과 일자리, 교육비와 노후의 부담은 국민 몫으로 남는다. 정치인들이 오늘의 권력만 좇을수록 국민의 내일은 더 불안해질 뿐이다. 국민은 결국 선거에서 그 정치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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