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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전쟁은 사람만 죽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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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공습에 키이우 극장 피해 입어
축적된 시간·기억마저 무너뜨려
2차대전 폐허 속 작곡 ‘애도 음악’
전쟁이 파괴한 문화 묵묵히 증언

전쟁은 언제나 사람의 삶을 먼저 무너뜨린다. 누군가는 집을 잃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는다. 그러나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전쟁은 한 도시가 오랜 시간 쌓아온 기억과 문화까지 함께 무너뜨린다. 그래서 폐허가 된 극장과 불타버린 공연장의 사진은 단순한 건물 피해 이상의 감정을 남긴다. 그것은 한 사회의 시간과 정신이 함께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BBC는 러시아의 공습으로 키이우의 말라 오페라 극장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루키야니우카 인민회관으로도 알려진 이 건물은 20세기 초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세워졌으며, 오랜 시간 공연과 전시, 실험예술이 이어져 온 장소였다. 단순한 극장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과 예술가들의 시간이 축적된 공간이다. 그래서 이 건물이 전쟁 속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은 단순한 시설 훼손 이상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공격받은 것은 벽과 천장만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되어 있던 시간과 기억이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사실 역사는 이런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5년 2월, 독일 드레스덴은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을 받았다. 불과 며칠 사이 도시 전체가 거대한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오랜 역사를 간직했던 건축물과 문화유산들도 함께 무너졌다. ‘엘베강의 피렌체’라고 불리던 아름다운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드레스덴 폭격이 지금까지도 특별히 비극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 도시가 단지 군사적 거점만이 아니라 유럽 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오페라 극장, 교회와 미술관들이 모여 있던 도시였다. 음악사에서도 드레스덴은 특별한 장소다. 베버와 바그너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활동했던 곳이며, 독일 음악 전통의 중요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드레스덴의 붕괴는 단순히 한 도시의 파괴가 아니라, 유럽 문화 자체가 무너지는 장면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바로 그 폐허 속에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메타모르포젠’을 작곡했다. 1945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23개의 독주 현악기를 위한 곡으로, 흔히 슈트라우스의 ‘애도 음악’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음악에는 단순한 슬픔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다. 음악은 거대한 절규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너진 도시를 천천히 바라보듯, 깊고 무거운 선율이 끝없이 이어진다.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동시에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자리 주변을 맴도는 듯하다.

특히 작품 마지막에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중 장송행진곡을 인용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슈트라우스는 악보 끝에 “In Memoriam!”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무엇을 위한 추모였는지는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 음악 안에서 무너진 독일 문화와 폐허가 된 도시들 그리고 인간 문명 전체를 향한 애도를 읽어낸다.

중요한 것은 ‘메타모르포젠’이 단지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전쟁이 인간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가는지를 보여준다. 건물은 다시 세울 수 있고 도시는 복구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시대의 기억과 문화, 사람들이 공유하던 감각은 한순간에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전쟁은 단지 현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함께 무너뜨린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극장이 공격받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오페라 극장의 벽이 무너지는 것은 단순한 시설 피해가 아니다. 그곳에서 울려 퍼졌던 음악과 박수, 사람들이 함께 웃고 울던 시간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문화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한 사회가 스스로를 기억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전쟁이 문화까지 파괴할 때 비극은 더 깊어진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기억할 공간까지 함께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전쟁은 총성과 폭발음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때로는 텅 빈 극장과 불 꺼진 공연장, 무너진 도시 위에 남겨진 침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메타모르포젠’ 같은 음악은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묵묵히 증언한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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