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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상처로 빚은 예술, 그 치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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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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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햄넷’ ‘센티멘탈 밸류’를 만나다

‘햄넷’, 11살 아들 죽음이 부른 가족 비애
아버지, 연극 무대위서 되살리려 노력
초연 무대서 아들 바라보는 엄마 마음
슬픔 못 지워도 견디는 힘을 가지게해

‘센티멘탈 밸류’, 가족 버린 아버지 귀가
영화감독으로 새 영화 찍으려고 나타나
비겁하고 이기적 행동이지만 악인 아냐
가족에 대한 미안함 작품에 녹여 표현

예술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삶의 고통이 예술로 빚어질 때 가장 절망적인 경험조차 상쇄되곤 한다. 말하지 못한 상처는 응어리로 남지만, 서사로 직조되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굳게 닫힌 마음은 녹아내리고 슬픔과 분노, 사랑과 용서가 제자리를 찾는다.

예술과 삶이 만나는 이러한 과정을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이는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관객을 찾는다. ‘햄넷’(클로이 자오 감독·25일 개봉)과 ‘센티멘탈 밸류’(요아킴 트리에 감독·18일 개봉)다. 두 작품은 다음 달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기대작이기도 하다. ‘햄넷’은 지난달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았으며, 오스카 작품상·감독상을 포함해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센티멘탈 밸류’는 9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햄넷’은 셰익스피어의 상실을, ‘센티멘탈 밸류’는 현대 예술가의 부채(負債)를 응시한다. 방향은 다르되 질문은 같다. 예술은 상처를 무엇으로 바꾸는가.

(위쪽부터) 영화 ‘햄넷’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센티멘탈 밸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위쪽부터) 영화 ‘햄넷’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센티멘탈 밸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외아들의 죽음, 비극의 탄생

1596년, 11세 햄넷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당시 유행한 전염병, 오늘날 ‘흑사병’으로 불리는 질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몇 해 뒤 그의 아버지 윌리엄은 희곡 ‘햄릿’을 무대에 올린다. 당시 문헌에선 햄릿(Hamlet)과 햄넷(Hamnet)이 혼용됐다. 둘은 사실 같은 이름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들의 죽음 이후 탄생한 비극에 붙은 아들의 이름. 우연으로 보기에는 묘한 겹침이다.

영화 ‘햄넷’은 매기 오패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오패럴과 자오 감독이 공동 집필한 각본은, 훗날 대문호가 될 ‘윌’(폴 메스칼)과 아내 ‘아녜스’(제시 버클리)의 만남과 사랑을 공들여 그린다. 두 사람은 결혼해 큰딸 수잔나를 낳고, 쌍둥이 햄넷과 주디스를 얻는다. 그림 같은 일상이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햄넷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족을 산산이 부수고, 아녜스는 날 선 비애를 토해낸다. 런던에서 예술에 몰두하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한 윌을 향한 그의 분노는 깊다. 부부관계는 벼랑 끝에 놓인다.

 

영화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곧 무대 위에서 햄넷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아들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상상한다. 압권은 런던 글로브 극장에서의 ‘햄릿’ 초연 장면. 객석에 선 아녜스는 설명되지 않는 분노와 공허에 잠식돼 있다. 햄넷은 무덤에 누워 있지만, 무대 위에는 청년으로 자라난 햄릿이 서 있다. 아녜스는 점차 무대 위 사건을 이해하며, 겁에 질리고 분노하고 동요하는 젊은 왕자를 향해 손을 뻗는다. 아녜스의 얼굴 위로 이해와 화해 감정이 겹겹이 쌓인다.

사적인 비애는 무대 위에서 보편적 비극으로 변환된다. 비극은 슬픔을 지우지 못하지만 대신 슬픔을 견딜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꾼다. 영화는 그 전환의 순간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기억의 집, 상처 위의 예술

‘센티멘탈 밸류’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오래된 목조 빌라를 무대로 펼쳐지는 가족 드라마다. 어머니를 막 여읜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와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 자매 앞에, 오래전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스가드)가 돌연 나타난다. 자매는 가족이 함께했던 집을 매각하려 하지만 법적 소유권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때 명성을 누렸으나 이제는 내리막길에 선 영화감독 구스타브는 이 집에서 새 영화를 찍겠다고 선언한다. 나치 점령기, 고문 후유증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다. 그는 뛰어난 연극배우인 첫딸 노라에게 출연을 제안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지닌 노라는 대본을 펼쳐보지도 않는다. 거절당한 구스타브는 할리우드 스타 ‘레이첼 켐프’(엘르 패닝 분)에게 역할을 맡긴다.

예술 창작을 위해 소원해진 가족에게 손을 내미는 구스타브의 태도는 분명 이기적이다. 딸들에게 남긴 상처 위에 적절한 사과나 변명 없이 새로운 작품을 쌓으려는 그는 비겁하고 형편없는 아버지이지만, 그렇다고 악인은 아니다.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진심을 작품에 녹이는 방식으로만 말하는 미숙한 인간일 따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럼에도 예술이 화해와 치유의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세대의 오래된 기억이 켜켜이 쌓인 목조가옥을 배경으로, 영화는 예술과 삶이 서로를 비추는 방식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위대한 예술은 삶에서 비롯되고, 삶은 다시 예술을 통해 견딜 힘을 얻는다. 영화는 그 순환의 고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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