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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팔짱끼기에 숨겨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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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07 23:04:43 수정 : 2026-01-07 23: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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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동등하지만, 각자가 맡은 직책과 위치는 다르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데 그 방식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작 역시 중요한 언어가 된다. 그런데 이 ‘행동의 언어’가 나라와 민족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 사실은 자문화와 타문화를 비교하기 전까지는 알기 힘들다.

미얀마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팔짱’은 겸손과 존중의 몸짓이다. 팔짱은 양쪽 팔을 가슴 쪽으로 안듯이 모으는 동작이다. 미얀마 학생들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릴 때, 혹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반드시 팔짱을 낀다. 선생님의 옆을 지나갈 때도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여 겸손과 존중을 동시에 표현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면 학생들은 모두 일어나 팔짱을 낀 채 “밍글라바 세야/세야마(안녕하세요, 남선생님/여선생님)”라고 인사한다. 이 행동은 “저는 선생님을 겸손하게 존중합니다”라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 자세를 어릴 적 유치원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며 자라서 이런 상황이 되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동작을 하게 된다.

먀닌이셰인(예진)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팔짱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한국에서 팔짱은 긍정적으로는 자신감과 당당함, 부정적으로는 거만함과 반항감을 나타낸다. 한국인들의 소개 사진에서 당당함을 드러내기 위해 팔짱을 끼고 선 모습,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악역이나 깡패가 자신을 과시하듯 팔짱을 끼는 장면들을 한국에서 매우 익숙한 이미지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팔짱은 ‘겸손’보다는 ‘거만’에 가까운 것 같다.

이 차이는 한국에 온 미얀마 노동자들에게 큰 오해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공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한국인 사장이나 상사 사이의 오해가 많은 것 같다. 미얀마 학교에서 배운 존중의 몸짓을 한국 직장에서 그대로 했다가 벌어진 오해이다. 상사가 혼내거나 가르칠 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것은 “말대꾸하지 않고 잘 듣고 있습니다”라는 의미이다. 반면에 한국 직장 상사는 “내가 혼내고 있는데 왜 팔짱을 끼고 있지?”라고 생각하며 미얀마 사람들은 예의와 겸손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쪽은 예의를 표현했는데 다른 한쪽은 무례로 여긴다. 결국 문제는 몸짓이 아니라 해석의 차이다.

팔짱 하나는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팔짱이라는 이 몸짓에는 그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가치관과 철학이 담겨 있다. 미얀마의 팔짱은 겸손을, 한국의 팔짱은 자신감을 나타낸다면,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서로 다른 행동 언어를 쓰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행동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것을 무례로 단정하기 전에 “이 행동은 어떤 문화에서 왔을까?”라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언어’뿐 아니라 ‘몸의 언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특히 노동이나 직장 현장은 문화가 직접 충돌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생기는 작은 오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일터 전체를 힘들게 만드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오해를 줄이고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상호 문화갈등은 거창한 사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인사하는 방식, 서 있는 자세, 손을 두는 위치처럼 아주 사소한 동작 속에도 일어난다. 다문화사회란 단순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다른 ‘행동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여야 한다.

 

먀닌이셰인(예진)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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