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변론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이었다. 헌법재판관은 ‘현자’ 이미지였는데, 이번 탄핵심판을 보면서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구나’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 전날 법조인들에게 ‘결정문에 화합 메시지가 들어갈지’ 전망을 묻자 나온 답변이다. 대부분 ‘메시지를 안 넣는 것이 낫다’는 반응이었다. 변론 진행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 선고 지연 문제 등이 자주 제기된 만큼 법리적인 판단만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교수는 문 권한대행이 윤 전 대통령 측 이의제기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고, 선고일엔 국민 통합 메시지를 내는 건 넌센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 방청을 위해 헌재에 온 한 시민은 “재판관과 변호사들이 치고받는 게 코미디 같았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지연될수록 헌재는 신뢰를 잃어갔다.
평의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 심리가 길어지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재판관들이 대립한다’는 출처 불분명한 소문까지 돌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기된 일련의 헌재 사건에서 재판관들은 각자 색이 분명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합의에 이르기 위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는 추측도 나왔다.
선고 지연 이유를 결정문에서 엿볼 수 있었다면 헌재의 장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겠다. 결정문에선 재판관들의 이견이나 토론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일부 재판관들이 보충의견을 달았으나 절차적 쟁점에 관한 내용에 그쳤다. 선고가 지연된 것에 비해 재판관 의견이 일치하고 내용이 간결한 점을 두고도 법조계는 여러 분석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국론 분열이 극심한 만큼 혼란을 진정시키고자 전원일치로 결론을 도출해 결정문을 적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회 안정은 정치의 영역이다. 헌재가 갈등을 종식시키는 모습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헌재는 민주주의에 대해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윤 전 대통령의 주장도 결정문 곳곳에 녹아있다. “피청구인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쓴 부분은 윤 전 대통령의 위헌 행위를 꾸짖은 결정문에서도 피청구인의 변론을 존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오자 ‘8대 0은 당연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같은 여론은 전원일치로 합의한 헌재 의도는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율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는 헌재의 시각에 맞게 이러한 중요 결정에도 다양한 재판관 견해를 담는다면 사회도 서로를 존중하며 합의하는 법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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