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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음식문화여행] 모두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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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대를 조금 빗겨나면 버스 안은 고요해진다. 사람들이 제법 차 있지만 묘하게 여유롭고, 허둥대는 사람보다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 많다. 무엇보다 푹 꺼지듯 앉아 잠든 사람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가 눈에 띈 것은, 그의 행동에 버스 안 사람들 대다수가 당황한 것은 말이다.

그는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 중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단말기에 카드를 찍으려는 그를 버스기사가 막았다. “음료 들고 타시면 안 됩니다. 내려서 음료 먼저 드시고 다음 차 타세요.” 버스 안팎으로 음료 반입 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적잖이 목격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대부분 테이크아웃용 컵에 든 커피를 들고 있었고, 어떤 이는 자신의 손에 그게 들려있는 줄도 몰랐다는 듯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습관적으로 커피를 사는 사람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려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칙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켰다. 그러니 나는 그가 당연히 버스에서 내릴 거라 생각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컵 가득 든 커피를 내려다본 그는 몸을 돌려 그것을 문밖으로 던져버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보도블록에 팽개쳐진 컵 뚜껑이 터지듯 열리면서 커피와 얼음이 사방으로 튀었다. 던져진 궤적 그대로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쏟아진 통에 버스 정류장 의자와 유리까지 전부 엉망이 되었다. “아니, 그걸 그렇게 버리면 어떡해요?” 버스기사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으나 그는 대꾸도 없이 카드를 찍고, 버스 안으로 척척 걸어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 시선도 버스기사의 말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정류장 여러 개를 지나도록 그는 시종일관 태연했다.

내가 타고 있는 것은 배차 간격이 상당히 짧은 마을버스였다. 지하철역까지 대략 삼십분쯤 되는 거리를 무한히 도는 순환버스로, 오전 시간대는 기껏해야 3분에서 5분 정도의 간격을 두었다. 또한 나는 커피가 흩뿌려진 정류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팔토시와 목장갑을 낀 노인분들이 빗자루와 손걸레로 일일이 쓸고 닦는 곳이었다. 시니어 일자리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분들 중 일부는 정류장 유리를 닦았고 일부는 기다란 집게와 파란 비닐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녔다. 나는 볕이 뜨거운 여름에도 찬기운이 선연한 지금도 그분들과 거의 매일 마주쳤다. 정류장을 청소한 뒤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본 것만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버스를 기다리면서 편안하고 쾌적하게 앉아 있던 공간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노인들과,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안정된 생활을 지원해주려는 정책과, 기획에 따른 실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시민들의 세금이 함께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학습해왔던 공동체 의식과 도덕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곳을 아무렇지 않게 망가뜨리는 사람, 이토록 사소한 규칙조차 기이한 방식으로 일그러뜨리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그를 열심히 노려보았다. 말끔하게 정리된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마음이 선득해졌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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