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명은 10년 수급요건 못 채워
월급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떼어 놓고도 회사가 이를 내지 않아, 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할 위기에 놓인 근로자가 13만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5만6883명은 가입기간이 119개월로, 한 달이 모자라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번거롭더라도 연금 납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사업장의 보험료 체납으로 가입기간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이력이 있는 가입자는 150만3427명에 달했다.
이들이 손해를 본 미납 기간은 1인당 평균 약 7개월이었다. 미납 기간별로는 △1∼5개월 95만4524명 △6∼11개월 32만3266명 △12∼23개월 15만7833명 △24개월 이상 6만7804명이었다.
◆ 한 달만 더 인정받으면 되는데…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10년(120개월) 이상이어야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장이 보험료를 체납하면 근로자가 실제로 일했더라도 그 기간이 가입기간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
현재 인정된 가입기간은 10년 미만이지만 사업장 미납 기간을 합치면 10년을 채우는 가입자는 13만4616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은퇴 연령에 들어선 60세 이상도 2만982명에 달했다.
10명 가운데 1.5명꼴(15.6%)은 새로 가입기간을 쌓을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특히 가입기간이 119개월에 그친 가입자는 5만6883명으로 전체의 42.3%를 차지했다. 회사가 체납한 보험료 가운데 단 한 달만 더 인정받아도 노령연금 수급 요건을 채울 수 있는 이들이다.
◆ 일시금 받고 연금 접은 2823명
이미 연금 수급을 포기하고 그동안 낸 보험료를 일시금으로 돌려받는 ‘반환일시금’ 수령자 가운데서도 체납 피해가 확인됐다.
2023년부터 올해 6월까지 반환일시금을 받은 이들 가운데 회사 미납 기간을 더했다면 10년 가입 요건을 채울 수 있었던 사례는 2823명이었고, 이들의 체납 기간은 모두 7만4947개월이었다.
한 사람당 평균 2년이 넘는 기간(약 26.5개월)이 회사 체납으로 비어 있었던 셈이다.
반환일시금은 가입기간이 10년 미만인 채로 60세가 되면 그동안 낸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한 번에 돌려주는 제도다(국민연금법 제77조). 평생 매달 받는 노령연금 대신 목돈 한 번으로 끝나는 만큼, 이들에게 회사 체납은 노후의 월 소득원 하나를 잃는 일이었다.
10년을 채우지 못해 반환일시금 대상이 되는 사례 자체도 적지 않다. 지난달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가입기간 부족으로 반환일시금 수급권이 생긴 사람은 137만4898명이었다.
◆ 내 몫 또 내도 ‘절반’만 인정
문제는 사업주의 체납으로 생긴 불이익을 근로자가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지만 납부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다.
근로자 몫인 기여금은 사업주가 월급에서 원천공제해 회사 몫인 부담금과 함께 내도록 돼 있다(국민연금법 제90조).
국민연금법 제17조는 사용자가 임금에서 기여금을 떼고도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그 기간의 절반만 가입기간에 넣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근로자에게 체납 사실을 통지하면 통지된 체납월의 다음 달부터는 그마저도 가입기간에서 빠진다.
이때 근로자가 체납 기간의 기여금을 직접 내면 그 기간의 절반을, 회사 몫인 부담금까지 함께 내야 기간 전체를 인정받는다. 월급에서 이미 떼인 돈을 한 번 더 내야 절반을 되찾고, 나머지 절반은 회사 몫까지 대신 내야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2021년 법 개정으로 납부 기한이 10년 지난 체납분도 이자를 더해 낼 수 있게 됐고, 건강보험공단이 나중에 회사로부터 체납액을 받아 내면 근로자가 중복으로 낸 돈을 이자와 함께 돌려주도록 했다.
같은 해 체납 사실을 문자메시지·전자우편으로 추가 안내하도록 하는 조항도 생겼다.
그러나 이는 근로자가 목돈을 마련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보험료조차 내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사업장의 근로자일수록 밀린 보험료를 한꺼번에 대신 내기는 쉽지 않다.
◆ 건강보험은 ‘근로자 잘못 없으면’ 보장, 공단 “구제 필요성 공감”
같은 사회보험이라도 건강보험은 사정이 다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는 사용자가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를 체납했더라도 그 체납에 직장가입자 본인의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보험급여를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즉 회사가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병원 이용을 막지 않는 것과 달리, 국민연금에서는 회사 체납이 근로자의 가입기간 공백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셈이다.
국민연금공단도 소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 답변을 통해 “사업주의 체납으로 급여에서 기여금을 공제했음에도 불이익을 받게 된 근로자의 구제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보험료 납부 없이 가입기간을 우선 인정하면 기금 재정 부담이 생기고 성실 납부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단이 제시한 대책도 고액·상습 체납 사업주의 명단 공개 기준을 현행 1년 이상·2000만원 이상에서 1000만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데 그쳐, 근로자 수급권을 직접 구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민연금법 제97조의2는 납부 기한 다음 날부터 1년이 지난 체납액이 2000만원 이상이고 납부 능력이 있는데도 내지 않은 사업장의 사용자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업장 체납 규모도 작지 않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2월 체납자 실태 확인 근거를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한 사업장은 5만7000곳, 체납액은 6542억원이었다.
소 의원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법적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는데, 사업주가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 잘못 없는 근로자가 노후 연금까지 잃을 위험을 떠안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월급에서 보험료를 공제한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근로자에게 다시 돈을 내라고 하는 구조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근로자의 가입기간을 우선 인정하고 체납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방안을 포함해, 특히 연금 수급을 앞둔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구제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60세 넘었어도 65세까지 이어 낼 수 있다
한편 제도가 바뀌기 전이라도 근로자가 쓸 수 있는 길은 있다. 체납 통지를 받은 근로자는 건강보험공단에 체납 기간의 기여금을, 또는 부담금까지 함께 내 가입기간을 되살릴 수 있다.
60세가 됐는데 가입기간이 10년에 못 미치면 65세가 될 때까지 국민연금공단에 신청해 임의계속가입자로 보험료를 이어 내며 부족한 기간을 채울 수도 있다(국민연금법 제13조).
다만 가입기간 부족으로 반환일시금을 이미 받은 사람은 임의계속가입 대상에서 빠진다. 60세 이후 반환일시금을 청구하기 전에 회사 체납 기간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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