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끊겨 교통 마비… 상점들 침수
거제에 3차 국가소방동원령 발령
양대 조선소 “출근 말라” 공지도
통영선 매몰된 주민 사투 끝 구조
중국發 저기압·고수온 만나 폭우
경남 남해안 괴롭힌 가뭄은 해소
17일 새벽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단지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간당 120㎜가 넘는 맹렬한 빗줄기가 퍼붓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산비탈이 무너져 내리면서다.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쏟아져 내린 붉은 토사는 순식간에 인접 아파트 저층부를 덮쳤다.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한 주민은 “갑자기 ‘쿵’ 하는 천둥 같은 소리가 나더니 흙더미가 집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고 몸서리를 쳤다.
잇단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와 경찰은 진흙밭으로 변한 현장에서 주민 구조에 여념이 없었다. 매몰된 1층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20대 주민 A씨는 끝내 숨졌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곤리리에서도 이른 아침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 B씨가 토사에 매몰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환 통영해경과 119구조대는 장대 같은 빗속에서 1시간30분가량 사투를 벌인 끝에 토사 밑에 있던 B씨를 구조했다. B씨는 양쪽 다리 골절이 의심되고 저체온증 증상을 보였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극한 호우가 할퀴고 간 부울경
광복절 연휴 사흘간 경남 남해안 일대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록적인 ‘물폭탄’이 쏟아졌다. 지난 15일부터 17일 오후 4시까지 거제시 누적 강수량은 무려 907㎜, 인근 통영시는 745㎜를 기록했다. 특히 17일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6시간 동안 거제 장평동 일대에만 508.8㎜의 극한 호우가 집중됐다.
도시 기능도 마비됐다. 거제 도심 도로 아스팔트 조각이 뜯겨 나갔고, 점포 유리창이 깨지거나 건물 내부 침수가 속출했다. 상수관로 2곳 이상이 파손돼 거제·둔덕면 일대에 단수가 예고됐고, 2100여 세대에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거제 양대 조선소는 도로 통제로 인해 노동자들에게 출근 불가 안내 및 대기를 통보했다.
경남권 배움터도 물폭탄을 고스란히 맞았다. 거제 외간초·장평초·거제애광학교 등과 통영 중·고교 및 유치원 등 교육시설이 침수됐다. 거제·통영·사천 3개 시·군에서 165명이 긴급 대피했으며 100여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임시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소방청은 가뭄 지원에 이어 거제와 통영 지역에 또다시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인접 시·도 소방력과 구조 장비 등을 긴급 투입했다.
이번 폭우는 경남을 넘어 부산과 울산 등 남부권 전역으로 확산했다. 부산에서는 폭우로 영도구와 서구에서 빈집 2채가 연속으로 무너져 인접 주민 24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울산 남구 신정동에서도 강풍에 쓰러진 가로수가 달리던 택시를 덮쳐 60대 승객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재개발구역 주택 담벼락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남해안 지역을 강타한 폭우는 경남지역 극심한 가뭄을 해갈시키기도 했다. 연휴 전인 14일 32.2%에 불과했던 경남 18개 시·군의 농업용수 평균 저수율은 17일 오후 7시 기준 46.8%로 상승했다. 특히 한때 28.7%까지 떨어져 바닥을 보이던 거제시 저수율은 74.9%로 급상승하며 평년 수준(78.2%)을 거의 회복했다.
◆거제와 통영에 많은 비가 내린 이유는
거제뿐만 아니라 다른 남부지역에서도 나무가 쓰러지고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16일 낮 12시쯤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산간도로인 515도로 숲터널에서 나무가 쓰러져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앞서 오전 10시50분쯤에는 서귀포시 남원읍에서도 나무가 쓰러지며 도로를 침범해 안전조치가 이뤄졌으며, 오전 7시5분 서귀포시 법환동에서는 도로에 물이 차 배수작업이 진행됐다.
특히 거제와 통영에 1972년 관측 개시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중국 쪽에서 발달한 저기압 영향으로 남쪽에서 고온다습한 바람이 강도 높게 유입됐기 때문이다. 북반구에서는 저기압의 경우 시계 반대방향으로 바람이 분다. 결과적으로 남풍이 우리나라 쪽으로 불면서 지형과 출동해 남해안과 제주에 비를 쏟아낸 것이다. 남해쪽 해수면 온도가 27∼28도로 높은 점도 남풍에 수증기가 많이 실리게 해 강수량을 큰 폭으로 증가시키는 요인이 됐다.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추가적인 피해 확산을 막고 조속한 수습을 위해 관계기관은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고립된 주민들을 신속히 구조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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