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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族이 억울해 할 ‘반달리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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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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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 석불(佛像)을 파괴한 행위는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불상’이란 평가를 받던 바미안 석불은 그저 “우상 숭배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졌다. 탈레반은 먼저 로켓과 탱크(전차) 포탄을 퍼부어 석불의 머리, 다리 등부터 부순 뒤 다이너마이트 폭약을 이용해 아예 산산조각을 냈다. 그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노무현정부(2003년 2월∼2008년 2월) 시절 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개혁’이란 명분 아래 과격한 주장을 펴던 강경파 소장 의원들에게 ‘탈레반’이란 별명이 붙었다.

 

아프가니스탄이 보유했던 세계적 문화유산 바미안 석불이 있던 자리(가운데). 지금 석불은 없어지고 빈 구멍만 남아 옛 석불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2001년 당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은 “우상 숭배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로켓과 전차포, 다이너마이트 등을 동원해 석불을 폭파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이 보유했던 세계적 문화유산 바미안 석불이 있던 자리(가운데). 지금 석불은 없어지고 빈 구멍만 남아 옛 석불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2001년 당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은 “우상 숭배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로켓과 전차포, 다이너마이트 등을 동원해 석불을 폭파했다. 연합뉴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포 정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요즘 같으면 ‘극좌 세력’으로 불릴 자코뱅(Jacobins)이 한동안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두대로 보내 목을 잘랐다.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들조차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가 그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례가 허다했다. 과거 유럽은 물론 세계 최고 문명국으로 인정을 받은 프랑스가 영국에 뒤처지고 심지어 독일보다 못한 나라가 된 것은 혁명 기간 국가의 보물급 인재들을 ‘반혁명 분자’로 몰아 닥치는 대로 목숨을 빼앗은 후과일 것이다.

 

대혁명을 계기로 탄생한 용어들 중 하나가 바로 ‘반달리즘’(Vandalism)이다. 당시 프랑스의 어느 가톨릭 주교가 자코뱅 조직원들의 도를 넘은 잔혹한 행태를 맹비난하며 고대 유럽의 반달족(族)과 비교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때 유럽 대륙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 서기 395년 서로마(이탈리아 로마 중심)와 동로마(튀르키예 이스탄불 중심)로 분열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1000년 넘게 존속한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로마 제국은 곧장 멸망하고 말았다. 그때 게르만족의 일부인 반달족이 서로마 제국의 문화유산을 마구 부수고 약탈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 반달리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 공공 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으로 규정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SNS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 공공 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으로 규정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SNS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의 공공 시설이나 동상 등 각종 기념물을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으로 규정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반달리즘은 과연 옳은 말일까. 역사학자들은 “반달족은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잘 받아들였으며 문화유산 파괴 등 악행을 저지른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시기에 반달족이 지중해 연안과 로마로 진출했다는 사실 때문에 오해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반달족은 6세기 이후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래도 반달리즘이란 용어를 접할 때마다 억울할 심정이 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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