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소니 악몽 답습할 우려도
사업 특성 맞춰 정교한 보완 필요
李 ‘뉴삼성’ 리더십 중대 고비 맞아
1995년 일본 소니 경영진은 미국식 업적주의를 본뜬 성과급체계를 전격 시행했다. 회사 측은 8개의 독립사업부(사내컴퍼니)로 쪼개 단기 영업실적에 연동한 5단계 성과급을 차등지급했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성과급이 아니었다. 일본 특유의 종신 고용과 온정주의문화 탓에 직원의 연봉은 부장·임원 수준을 넘을 수 없고 해고도 없었다. 당장 반쪽짜리 성과급은 소니 기술의 심장 연구개발(R&D)을 망가트렸다. 엔지니어들이 단기 성과에 급급, 위험이 큰 기술개발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조직이기주의와 하향평준화·무임승차 등 부작용이 속출했고 핵심 인재들은 회사를 떠났다. 한때 세계전자시장을 지배했던 ‘거인’ 소니는 10년 후 적자의 늪에 빠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소니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 선대회장은 2001년 소니 성과급과 비슷한 초과이익성과급(OPI)을 도입하면서도 ‘천재경영’이란 비밀병기로 소니의 덫을 피해 갔다. 그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며 사장 연봉의 2∼3배를 웃도는 파격적 보수로 S급 인재를 영입했다. 진대제·황창규·권오현 등 스타 경영인이 등장했고 수백억원대 자산가로 변신하며 샐러리맨 신화를 썼다. 그 덕에 삼성전자는 최초, 최대의 기술과 제품을 쏟아내며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변신했다.
삼전이 오늘 노조원 투표로 확정한 임금협약안은 삼성신화를 떠받친 신상필벌 원칙을 깨고 소니를 망가트린 독소가 가득하다. 협약안은 사업성과의 10.5%를 반도체(DS)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으로 10년간 자사주로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성과급 재원의 40%를 DS부문 전체 임직원에게 균등 배분하고, 나머지 60%만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는 점이다.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1인당 6억원 안팎의 보상을 받고, 적자인 파운드리(위탁생산)·시스템LSI(설계) 직원도 수억원대를 챙긴다. 과거 워크맨과 TV사업에서 번 돈을 적자에 허덕이던 엔터테인먼트(영화·음악)와 게임의 성과급 재원으로 메웠던 소니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인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경영진의 고민은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수평적 협업과 인재들의 집단지성이 비범한 성과를 내도록 판을 깔아주자는 의도도 읽힌다. 이재용 회장은 “한 몸, 한 가족으로 힘을 모아 달라”고 했고 전영현 DS 부문장(부회장)도 “갈등의 시간을 뒤로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현실은 딴판이다. 스마트폰·가전 등 완제품(DX) 직원들은 성과급이 600만원어치 자사주에 그치자 펄쩍 뛴다. DX부문에서는 과거 반도체가 적자를 낼 때 휴대폰 등에서 번 돈으로 투자해 성과를 낸 게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교섭안 백지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직원·부서 간 반목과 갈등, 조직 균열은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지금 삼전의 역대급 실적은 인공지능(AI)시대의 급격한 도래로 갑자기 반도체 수급에 병목이 생긴 ‘천운’을 빼곤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지난 몇 년 동안 삼전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초격차 기술이나 제품이 나오지도 않았다. 삼전이 엔비디아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퀄테스트(품질검증)를 간신히 통과했지만 HBM3의 경우 점유율이 30%로 SK하이닉스(50%대)에 한참 모자란다. 파운드리도 점유율이 7%로 대만 TSMC(70%)에 비할 바 못 된다. 성숙단계에 접어든 휴대폰과 가전 분야도 큰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반도체 가격의 거품이 꺼지면 커다란 위기가 닥칠 게 뻔하다. 이런 판에 성과급 잔치까지 벌어지니 소니 몰락의 악몽이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이 선대회장은 잘 나갈 때도 “5년 후, 10년 후 삼성이 무엇으로 먹고살지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어떤 제도든 완벽한 건 없고 위험과 기회가 혼재하는 법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 않도록 운용의 묘를 살리고 사업 특성에 맞춰 정교한 보완책도 뒤따라야 한다. 결국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건 이 회장의 리더십이다. 이 회장의 ‘뉴삼성’이 진짜 승어부(勝於父)의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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