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헌법을 개정해 통일과 민족 개념을 삭제하고, 영토 조항을 만들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국가’ 노선을 제도화했다. 다만 ‘적대적 두 국가’나 ‘교전국 관계’ 표현,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구체적인 규정은 넣지 않아 향후 남북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 지우고 ‘영토’ 넣은 北 헌법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6일 통일부 기자단 간담회에서 북한이 지난 3월22∼23일 개최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를 통해 개정한 북한 헌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북한 헌법에 영토 조항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새 헌법은 제1조에 국호를 명시하고, 이어 제2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로씨야련방(러시아),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해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고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영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주권 영역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내용도 넣었다. .
새 헌법에서는 통일 개념과 민족과 관련된 내용이 사라졌다. 이 교수는 기존 헌법 속 ‘북반부’, ‘조국통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등이 새 헌법에서는 삭제됐다고 짚었다. 기존 헌법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 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제9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북반부라는 표현을 삭제했다는 점은 북한이 스스로를 한반도 북쪽 지역의 정권으로 규정하지 않겠다는 흐름으로 읽힌다. 남북을 국가 간 관계로 재배치하겠다는 뜻이다.
◆‘적대국’ 표현은 빠져…경계선 논의 여지
다만 한국을 적대국이나 주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 방향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명시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 바 있다. 남쪽 육상, 해상 경계선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NLL 등 해상 경계 문제를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향후 분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으로 해석된다.
이 교수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표현이 사라져 북한이 얘기한 두 국가론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든다”며 “하지만 ‘전시평정’, ‘사상교양’ 등 표현이 빠져있어 남북이 평화공존할 수 있는 희망을 내놓을 수 있는 헌법안”이라고 진단했다. 또 “해상경계선 얘기가 나오는 순간 타협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며 “그 언급이 빠진 것은 북한도 관련 분쟁 요인을 만들고 싶지 않은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남북 간 ‘경계선 획정위원회’ 등 협의체를 만들어 충돌과 갈등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북한의 헌법 개정이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주의와 혁명국가 색채를 걷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헌법 서문에 있던 김일성, 김정일의 국가건설·통일·대외정책 내용 대부분을 뺐다. 선대를 공화국 창건자·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규정하고 국가의 업적을 서술한 16개 문단을 삭제하고 김일성·김정일 언급을 뺀 다른 문구로 대체했다. 기존 헌법이 사회주의 체제 성격과 혁명 전통을 앞세웠다면, 새 헌법은 국가 이름과 영토를 먼저 규정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바뀐 셈이다. 명칭을 ‘사회주의 헌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으로 바꿔 국가 정체성을 앞세운 점도 이 일환이다.
북한의 영토조항 신설은 한국 헌법과의 관계에서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중심으로 해석하면, 북한이 헌법에 별도 영토 조항을 두고 남쪽을 대한민국과 접한 영역으로 규정한 것은 우리 헌법상 영토 개념과 충돌할 수 있다. 하지만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라 평화적 통일정책을 세우고 추진한다고 명시하는 만큼, 이를 남북의 현실적인 관계와 통일 과정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남북이 별도 통치권을 행사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영토조항이 평화공존의 장애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제3조 중심의 해석과 제4조 중심의 해석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며 “규정 자체만으로 판단을 내릴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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