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떠나고… 떠안은 가장의 무게
폭력 일삼다 8년 전 집 나간 아빠
아픈 엄마는 퇴원 이후 거처 옮겨
어린 두 동생 돌보던 사춘기 소녀
스무살 되자 사실상 부모가 됐다
‘애어른’ 된 수빈
이혼 후 점점 무관심해진 엄마
방임 처벌도 받았지만 안 변해
이젠 성인 돼 기관 관리 못 받아
‘대학 새내기’ 된 다은
지켜주던 엄마 하늘나라로 떠나
아빠·언니와는 등 돌린 채 살아
“위급할 때 도움 줄 어른 필요하죠”
반지하 현관에 물이 차올랐다. 흰색 크록스와 검은색 뉴발란스 운동화, 강아지 얼굴 모양을 본뜬 슬리퍼가 동동 떠다녔다. 화장실 배수구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한동안 치우지 않은 채 통돌이 세탁기를 돌린 탓이었다. 발목 높이로 차오른 물이 타일 사이의 균열을 비집고 현관까지 번졌다.
경기 성남시의 한 달동네 비탈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붉은 벽돌 연립주택이 나온다. 스무 살 수빈은 반지하층 찢어진 장판 위에서 취재팀을 만났다. 수빈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버려두면 마를 거예요.”
수빈의 꿈은 성우다. 대학에 가지 않은 수빈은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매달 꼬박 30만원이 들어간다. 학원비는 주말에 가끔 나가는 웨딩홀 뷔페 아르바이트 급여로 충당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취업 관련 교육이 필요한 이들에게 5년간 300만원을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 사업에 대해선 잘 모른다. 3월 27일 서류 접수를 마감한 올해 KBS 전속 성우 공개 채용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목이 안 나와서”라고 했다.
매일 오후 2시쯤 수빈은 눈을 뜬다고 했다. 초등학생인 동생 수현과 수아는 수업이 끝나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저녁 식사까지 해결한 뒤에야 돌아온다. “평일에는 보통 강아지들이랑 있는 편이에요.” 수빈이 “저는 요즘 일찍 자요. 12시면 자요”라고 말하자, 옆에 앉은 수아가 “언니 새벽 2시, 3시에 잤잖아”라며 깐족였다.
수빈은 아직 13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대 같은 장맛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날, 지역아동센터에 가다가 미끄러진 수빈은 무릎이 찢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수빈에게 아빠는 대뜸 화를 냈다.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다치고 왔어?” 그날 이후로도 아빠의 폭언과 폭력은 계속됐다. 엄마의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 수빈이 6학년이 되던 해 아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 그제야 엄마는 이혼을 결심했다. 아빠는 전화번호를 바꿨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아졌다. 외할머니가 혈액암 진단을 받은 것은 수빈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2022년 겨울이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있는 충남 공주시를 수시로 오가기 시작했다. 공주에서부터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까지의 149㎞ 통원길에 늘 함께했다. 외할머니 병세가 악화할수록 엄마가 집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사흘꼴로 귀가했던 엄마는 곧 2주씩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수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약간의 해방감도 느꼈다. 수업을 마치면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야 했지만, 엄마 없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사춘기 소녀에게 조금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한 달이 넘어가면서부터다. “이럴 거면 내가 나가서 따로 살래. 엄마, 우리한테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야?” 수빈이 따져 물었지만, 엄마의 귀가는 되레 더 뜸해졌다.
갑자기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교회 사람들이 엉망이 된 집안을 얼핏 보고서 신고한 것 같았다. 동네 주민들은 “애들이 맨날 군것질만 하더라. 애들끼리 씻어봐야 눈곱밖에 더 떼겠느냐”고 수군댔다.
엄마는 방임 혐의로 수사받게 됐다. 수빈도 경찰서에 몇 번이나 불려 갔다. “엄마가 처벌받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랑 따로 살고 싶지 않아요?” 형사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수빈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지난해 6월 엄마는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엄마 미영은 2024년 6월부터 두 달 가까이 집을 비웠다. 법원은 미영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다는 점, 행정기관의 연락을 받고 돌아와 자녀들의 양육에 힘쓰고 있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정작 엄마는 다시 집을 비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엄마는 입원했다. 급성 협심증이라고 했다. 퇴원 무렵에는 아예 거처를 옮겼다. 수빈 남매가 살고 있는 곳과 걸어서 5분 거리의 투룸 빌라였다. 미영은 자신의 ‘독립’에 대해 “아파서 요양 가 있는 것”이라며 “제가 아픈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기 싫다”고 말했다. “좀 쉬고 싶어요. (간병이) 너무 힘드니까. 저도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잖아요”라고도 했다. 미영은 같은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졌고, 올해 3월 보호관찰 6개월 처분을 받았다. 미영은 여전히 자녀들과 따로 살고 있다.
지난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수빈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모니터링 대상에서 벗어났다. 수빈은 이제 동생 수현과 수아의 ‘보조 양육자’로 분류된다. 수현과 수아에게 성인 보호자가 생겼으니, 엄마의 부재를 문제 삼을 사람은 더 없을 것이다.
정부는 수빈처럼 고립된 청년(19~34세)을 위해 ‘청년미래센터’를 올해 전국 8곳으로 늘렸다.
예산도 43억원에서 59억원으로 늘었다. 직접 도움을 요청하면 사례관리사가 집으로 찾아오는 방식이다. 수빈이 엄마 없이 처음으로 한 달을 버텼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열여섯 살 때였다. 그 집에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스무 살의 수빈을 꺼내려면 열여섯의 수빈을 먼저 들여다봤어야 했다. 한 번도 도움을 받아본 적 없는 수빈이 제 발로 센터 문을 두드리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몇 년을 이렇게 지내니까 책임감도 더 생기더라고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는 수빈의 등 뒤로 서랍장 위에 놓인 빨래 바구니가 보였다. 세 식구의 묵은 빨래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 위태로웠다. 싱크대 안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사용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식기가 가득했다. 현관문 바깥쪽에는 1만1000원 남짓한, 2026년 2월 수도요금 납부를 재촉하는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우유 대여섯 박스가 인근에 쌓여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배달 용기째 가득했다. 수빈이 쓰는 작은 방 안에는 텅 빈 생수병 서너 개가 굴러다녔다.
수빈은 “동생들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살아도 괜찮겠다 싶더라”고 말했다. 막내가 성인이 되려면 8년을 기다려야 한다. 스무 살의 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수빈과 달리 열아홉 다은에게는 지켜야 할 식구도, 돌아갈 집도 없었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세종 시내의 임대 아파트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지금도 그 집 현관문 앞에는 밀린 임대료 납부를 독촉하는 고지서와 강제퇴거를 경고하는 쪽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귀 세대는 계약기간 만료 후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본 경고장을 발부합니다. 계약 미체결 시 명도소송, 강제퇴거 대상이 됨을 사전 안내 드립니다.” 세종시청 명의로 붙은 경고 문구는 건조했다.
다은은 이제 그 집에 살지 않는다. 2년 전 갑자기 집을 비우느라 두고 온 물건이 많지만, 다시 그곳을 찾기가 영 내키지 않는다. “냉장고에 음식이 있는 상태로 전기가 끊겨서. 거기에 벌레 있는 거 본 이후로, 사실 거기 사진 앨범이나 이런 게 다 있어서 가져와야 하는데, 가져와야 하는데 너무 싫어가지고.”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의 임대 계약이 어떻게 되는지 다은은 알지 못한다.
아빠는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다은 곁을 지켰던 엄마는 202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와 오빠는 이미 집을 떠나 가정을 이룬 지 오래였다. 엄마 장례식 때 만난 오빠는 다은에게 “엄마 통장에 생활비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 다은은 오빠가 시키는 대로 남은 돈을 인출해 건넸다. 장례가 끝난 뒤 그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다은은 고깃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7일 근무, 휴일은 없었다. 다은은 매일 검은 옷을 입었다. 무채색 얼굴로 주문한 음식을 날랐다. 온라인에 ‘알바생이 너무 싸가지없다’는 내용의 식당 리뷰가 올라오곤 했다. 다은은 서비스직은 자기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이따금 집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사람들을 데려와 집에서 술을 마셨다. 다은의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같이 놀자는 아저씨도 있었다. 집 곳곳에 술병과 담배꽁초가 쌓여갔다. “엄마 돌아가시니까 좋아?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다은이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집을 떠났다.
그사이 다은의 아르바이트 장소는 고깃집에서 김밥집으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가게로 바뀌었다. 아무리 일해도 돈이 부족했다. 고양이 종양 수술비 30만원이 모자랐다. “그러니까 고양이 키우지 말라고 했잖아. 돈 못 빌려줘.” 오빠는 차가웠다. 집을 나간 아빠한테 기초생활수급비 중 자기 몫을 보내달라며 농협은행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냈다. “알겠다”는 답장이 왔다. 아빠는 그 길로 은행에 가 다은의 계좌 속 돈을 몰래 인출했다.
아빠는 지난해 6월 아동방임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아동학대로 처벌받은 전력만 2회, 아동보호사건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4회였다. 법원은 “피고인은 2024년 4월 주거지에서 갑자기 퇴거하면서 그 임대료 등을 납부하지 아니하여 전기와 가스 공급이 끊기게 함으로써 피해자가 주거지에서 생활할 수 없도록 하고, 피해 아동에게 경제적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아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를 하였다”고 판시했다.
재판 과정에서 아빠는 학교에 찾아와 다은에게 처벌 불원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안 써주면 죽여버리겠다”고도 했다. 법원은 다은이 쓴 불원서에 대해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유리한 양형 요소에서 배제했다.
“여기는 진짜 사람이 살 집이 아니다. 이건 학대야.” 엄마 생전부터 종종 집을 찾아와 가사를 도와주셨던 자원봉사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가 알아봐 준 원룸으로 다은은 거처를 옮겼다. 사업자용 오피스텔이라 전입신고는 할 수 없었다. 다은의 주민등록은 아직도 예전 임대 아파트에 묶여 있다. 다은은 “맛있는 거 먹거나 제 친구들이랑 얘기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면 힘들었던 일 싹 다 잊어버려서 빨리 빠져나온 느낌이에요. 그리고 제 집이 생기니까 약간 외롭긴 한데, 괜찮아졌어요.”
올해 3월 다은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전에 있는 한 호텔경영학과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은은 “그냥 국외로 나가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아직도 다은은 세종에 살고 있다. 학교까지는 시내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아르바이트도 세종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계속하고 있다. “만약에 여기 도시까지 떠나버리면 나중에 돌아올 곳이 없어지는 느낌이어서.” 아이라인을 눈꼬리 방향으로 길게 뺀 다은이 입을 다물었다.
가끔은 다은도 ‘어른’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했다. 다은은 “아무래도 미성년자였으니까 제가 혼자 못하는 일들. 진짜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제가 눈치 보고 말하는 게 아니라”라고 말했다. “저번에 길을 걷다가 넘어져서 발목에 인대가 늘어난 거예요. ‘학교 어떻게 다니지?’ 이러면서. 저를 돌봐줄 사람도 없어서요.”
최근 다은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언니와 오빠가 엄마의 봉안당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니 계정에 올라온 유골함 앞 명패에는 언니와 오빠, 그들의 자녀 이름이 쓰여 있었다. 다은은 없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늦은 저녁 무작정 봉안당을 찾았다. 봉안당은 닫혀 있었고 한동안 다은은 그 앞을 맴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사진: 유희태 기자, 편집: 이대용 기자
미술: 손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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