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을 반기는 목소리가 교도소 담장을 넘고 있다.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 핵심 인물 조주빈은 그중 하나다. 조주빈은 미성년자 성폭행 등으로 징역 47년 4개월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다. 조주빈은 최근 폐쇄된 옥중 블로그 게시글에서 “양형 기준이 20년 이하고 유기형 상한은 45년인데 법원이 법을 다 무시했다”면서 “사법부 미친 짓에는 아예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징역 5년이 추가된 항소심 판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며 “재판소원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온라인의 한 성범죄 관련 커뮤니티에는 “요즘 경찰, 검찰, 법원 다 여자편이잖냐”며 “재판소원(4심제)은 피고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는 국가가 가해자에게 형집행 가처분을 포함해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불복 기회를 준 셈이다. 민사 사건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재판소원에서 반대 당사자, 즉 3심까지 거쳐 승소한 쪽의 실질적 방어권 행사 방법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재판소원 시행을 둘러싼 현실적 문제는 이러한 ‘피해자’나 ‘승소 당사자’의 억울함에 그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상 1심에서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다. 이후에는 같은 혐의로 재구속할 수 없다. 구속기간 6개월을 채워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재판소원이 인용돼 판결이 취소되면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 이미 종전 구속기간 6개월을 모두 사용한 상황에서 새로운 재판을 무조건 불구속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의 문제가 생긴다. 판사들 사이에서 “재판 취소 이후의 소송절차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구속기간을 비롯한 상당수 문제는 법원이나 개별 재판부가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손인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10일 재판소원 도입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소원 도입으로 인해 법원에 별도의 (소송)절차규정이 필요한 부분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실무를 도외시한 안이한 인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재판소원으로 재판이 취소될 경우 상급심의 파기환송 판결과 비슷한 효력이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다만 “법원이 재판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파기환송도 재심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손 사무처장은 “어떤 명칭을 붙일 것인지는 법원에서 적절하게 네이밍해야 할 부분”이라며 이를 ‘네이밍’의 문제로 치부했다.
재판기록 송부 문제에 대해서도 “USB에 담아보내거나, 법원이 전자헌법재판센터에 기관회원으로 가입하거나, 헌재 내부 전산망에 웹하드를 두는 방법 등이 있다”면서 “한 달 안에도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법원과 검찰, 경찰이 수년의 시간과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전자소송 시스템 연계 작업은 사실상 헛수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법 3법을 전리품처럼 챙겨든 집권여당의 관심은 이미 6월 지방선거로 옮겨갔다.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법안을 즉각 시행하는 데 동조한 헌재는 “국민 기본권의 실질적 진전”이라고 자평했지만, 파생되는 실무 문제는 사실상 법원에 넘기는 모양새다. 재판소원 도입은 위헌 소지가 크고 ‘무한 소송 지옥’이 될 것이라던 법원이 결국 그 절차적 혼란을 떠맡게 된 셈이다. 일선의 한 부장판사는 “볼일은 자기들이 봐놓고, 뒤처리는 남보고 해달라는 행태 아니냐”며 “법원행정처도 폐지하자는데 그럼 뒷수습은 누가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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