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이란 전쟁에서 승자가 내민 항복 조건을 패자가 그대로 따르는 것을 뜻한다. 이 개념이 유명해진 것은 미국 남북전쟁을 거치면서다. 당시 북군 지휘관으로 훗날 대통령까지 지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남군 부대와 싸울 때마다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 정작 1865년 4월 남군 총사령관이 패배를 인정하자 그랜트는 아주 관대한 항복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전후 둘로 쪼개진 미국 사회를 신속히 하나로 통합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조치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만났다. 연합국의 향후 전략에 관해 협의한 두 사람은 공동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 자리에서 루스벨트는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 등 추축국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처칠과의 사전 조율 없이 즉흥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영국은 당혹감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토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훗날 2차대전 역사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 방침 고수 때문에 전쟁이 더 장기화하고 전후 피해 복구도 어려워졌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무조건 항복이 갖는 무자비한 어감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자살할 때까지 총을 놓지 않았다. 일본도 원자폭탄 투하로 상상 이상의 엄청난 파괴를 목도한 뒤에야 전의를 접었다. “무조건 항복 요구는 최악의 실수”라는 일부 학자의 비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란과 전쟁 중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이란과의 합의는 무조건 항복 말고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일본 등 적국들을 상대한 방식 그대로 이란도 아주 혼쭐을 내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란 측은 즉각 “트럼프의 망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제는 트럼프 보란 듯 모즈타바 하메네이(56)를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로 선출했다. 트럼프와 미국이 그토록 미워했던 알리 하메네이(사망)의 차남이다. 현재로선 2차대전 때의 독일, 일본처럼 이란이 백기를 들고 무조건 항복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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