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빙벽을 녹인 종교적 신념과 민간 외교의 힘
한반도의 허리가 잘린 지 80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 남북 관계는 여전히 짙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 정부 주도의 공식 외교가 경색될 때마다, 막힌 혈관을 뚫고 물밑에서 평화의 물꼬를 텄던 것은 민간 차원의 끈질긴 노력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이 걸어온 대북 교류의 역사는 그 규모와 파급력 면에서 독보적인 궤적을 그려왔다.
가정연합의 대북 사업은 단순한 일회성 원조나 시혜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신통일한국이라는 거대 담론 아래, 종교적 신념인 참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과거 가장 강력한 승공(勝共) 운동의 선봉에 섰던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평양 땅을 밟았던 사건은 현대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민간 외교의 장면으로 기록된다. 35년 넘게 이어진 이들의 여정은 경제적 협력과 문화적 공감 등 화합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평화 운동의 모델을 제시했다.
북한 관광 및 정주 성지순례의 개시
문선명 한학자 총재의 방북 이후 1992년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북한의 평양과 금강산 등을 방문하는 관광이 시작됐다. 같은 해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문총재의 고향인 정주와 한총재의 고향인 안주, 나아가 흥남을 관광하는 기회도 가졌다.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일본에서 오야마다 히데오 외 219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 후 매년 성지인 정주 순례가 진행됐다.
경제 협력의 실체: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이 남긴 발자취
가정연합의 대북 사업은 선언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체로 형상화되었다. 특히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물로서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적 경영 기법과 남측의 기술력을 이식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1998년 설립 인가를 받아 2002년 남포시에 준공된 평화자동차 종합공장은 남북 합작 투자의 효시였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이 공장에서 생산된 휘파람, 뻐꾸기 등의 자동차 모델은 평양 시내를 누비며 북한 주민들에게 남측의 비약적인 성장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개성공단 모델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도된 선구적인 경제 협력 모델로, 폐쇄적이었던 북한 경제 체제에 작은 틈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평양의 1급 숙박 시설인 보통강호텔을 가정연합 측이 인수하여 운영한 사례는 대북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곳은 남북 회담의 주요 장소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도 소통의 불씨를 지키는 사랑방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에 2007년 평양에 건립된 세계평화센터는 남북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학술회의와 교류 행사를 뒷받침했다.
문화와 스포츠, 마음의 벽을 허무는 소프트파워
정치적·경제적 접근이 한계에 부딪힐 때, 가정연합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부드러운 힘을 빌려 남북의 정서적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평양 공연이다. 1998년과 2000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측 어린이들이 평양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쏟아냈을 때, 북측 관객들 역시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어린 천사들의 목소리는 이념의 벽을 허물고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화답하듯 북측의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서울을 방문하며 민간 차원의 문화 교류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 한학자 총재와 신통일한국의 글로벌 확장
2012년 문선명 총재 성화 이후, 한학자 총재는 그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더욱 확장된 개념의 신통일한국 운동으로 진화시켰다. 이제 남북 교류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전 세계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국제적 평화 운동으로 발돋움했다.
그 중심에는 ‘피스로드 통일 대장정’ 프로젝트가 있다. 전 세계 160여 개국이 참여하는 이 행진은 한반도 통일이 단순한 민족 내부의 문제를 넘어 세계 평화의 핵심 고리임을 국제 사회에 역설한다. 이 행진은 평양에서도 열렸는데, 러시아 가정연합 회원들이 참가했다.
민간 채널의 가치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하여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모든 대화 통로가 차단될수록, 민간이 닦아놓은 채널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가정연합의 35년 남북 교류 역사는 정부가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길을 종교와 평화의 이름으로 먼저 개척해왔음을 보여준다.
물론 대내외적인 정치적 변수와 대북 제재 등 현실적인 제약은 여전하다.
이제 지난 성과를 발판 삼아, 남북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잘사는 공생·공영·공의’의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가정연합이 닦아온 피스로드가 언젠가 평양과 서울을 잇는 자유로운 고속도로가 되고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의 발원지가 되는 그날까지 민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무조건 항복](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09/128/20260309519486.jpg
)
![[채희창칼럼] 도 넘은 ‘사법부 흔들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09/128/20260309519483.jpg
)
![[기자가만난세상] 日 응급의료센터와 파파고](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09/128/20260309519428.jpg
)
![[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무위의 리더’ 황희가 그립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09/128/20260309519356.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