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통합특별시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행정구역을 하나로 묶어 광역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핵심은 도시의 크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묶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연결하느냐’다. 행정 통합은 되돌리기 어렵다. 조직과 예산, 인사가 결합되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다. 일단 만들어지면 통합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되기 쉽다. 기능 개선보다 상징과 권한 문제가 앞서는 순간, 통합은 해법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된다.
유럽은 다른 길을 택해왔다. 네덜란드의 란트슈타트(Randstad)는 암스테르담·로테르담·헤이그·위트레흐트 등 여러 도시가 교통망과 산업 전략을 공유하는 다핵 도시권이다. 하나의 특별시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국제공항·항만·금융·행정을 기능별로 분담하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프랑스 파리권에서도 해법은 행정 통합이 아니었다. 파리를 중심으로 한 광역권은 주거, 교통, 환경 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하면서도 주변 도시의 자치권은 유지한다. 문제를 ‘행정 경계’가 아니라 ‘통근권’과 ‘생활권’ 기준으로 다루는 것이다. 심지어 국경을 넘는 협력도 가능하다.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는 하나의 통합도시가 아니다. 대신 노동시장과 교통을 연결한 ‘외레순 지역’으로 협력한다. 국가도, 도시도 합치지 않고 기능만 묶은 사례다. 이런 협력을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장치가 유럽영토협력그룹(EGTC·European Grouping of Territorial Cooperation)이다. 이는 국경을 접한 지방정부들이 별도의 ‘통합정부’를 만들지 않고도 공동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EU가 마련한 법적 틀이다. 각 도시는 기존 행정권한을 유지한 채, 특정 기능만 공동기구에 위임한다. 통합이 아니라 협력을 제도화한 장치다.
이와 달리 유로리전(Euroregion)은 이러한 제도적 틀을 활용하거나, 그 이전부터 형성된 실제 협력 지역을 가리킨다.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와 벨기에 접경 지역 등에서 여러 유로리전이 운영되며 교통, 환경, 고용 정책을 공동으로 조정한다. 유로리전이 ‘어디에서 협력하느냐’를 보여주는 사례라면, EGTC는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느냐’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수단이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도시를 먼저 합치지 않았다. 교통, 산업, 환경, 주거 같은 기능부터 연결했다. 그리고 그 연결은 필요하면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면 한국의 통합특별시 논의는 순서가 거꾸로다. 기능 협력이 충분히 축적되기도 전에, 경계부터 고정하려 한다. 통합이 곧 효율이라는 믿음은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했을 때 되돌릴 수 없는 비용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도시 문제는 지도 위의 선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하나로 묶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 해결하느냐다. 통합특별시라는 단단한 제도보다 기능을 중심으로 한 연성적 연결이 더 현실적이고 더 안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름의 도시’가 아니다. 교통은 함께 설계하고, 주거는 같이 계획하며, 산업과 환경은 공동으로 관리하는 도시권이다. 유럽의 사례는 ‘한국도 도시를 합칠 수 없으니 협력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합칠 수 있을 때일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다. 먼저 교통·주거·환경처럼 기능 단위의 공동계획과 공동재정을 작동시켜 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통합을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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