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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사라져야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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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18 22:48:37 수정 : 2025-12-18 22: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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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명·권력도 ‘순환’ 없으면
비극 초래… 기후정책도 마찬가지
에너지 체제·산업 구조 바꿔야
온난화로 신음하는 지구도 살아

“생존제한법이 없으면 옛날 사람들이 사회에 영원히 존재하게 됩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육체는 늙지 않아도 정신은 늙습니다. 마음이 늙은 사람은 더는 혁신을 이루어낼 수 없죠.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지 못합니다.”(야마다 무네키 ‘백년법’)

야마다 무네키의 공상과학소설 ‘백년법’은 불로불사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일본의 미래 사회를 그린다.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20대에 HAVI라는 시술을 받고 100년이든 200년이든 언제나 똑같은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 죽음은 지극히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죽음이 사라진 세상은 낙원일까. 죽음 없는 세상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하수관 없는 도시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인이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되자 사회가 급속히 늙기 시작했다. 식량, 에너지 같은 물질적 자본은 기술로 어찌어찌 해결한다지만, 문제는 요직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정부와 기업은 정년제를 폐지했다. 유능한 인재를 영구히 모시겠다는 명목이지만, 실은 간부의 자리보전을 위해서였다. 고위직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고, 사회의 혁신은 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HAVI 시술 후 생존 기간을 백 년으로 제한하는 백년법이 도입되지만, ‘대통령이 인정하면 무기한 살 수 있다’는 특례법이 있어 대통령을 위시한 지도부의 세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우리나라에도 권력의 정점에서 영원한 전성기를 구가하려던 이들이 있었다. 현실에 없는 HAVI 시술 대신 무력으로 입법권과 사법권 장악을 노렸단 점이 다르달까. 5년 뒤, 10년 뒤에도 같은 얼굴의 사람들이 권력을 독식할 수도 있었단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유한함’이라는 것은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벗어나기 어려운 진리다. 이 행성에 담긴 물리량은 한정돼 있기에 죽음은 생명과 이어지고, 그러한 명멸 속에 유한한 물질은 자리를 바꿔가며 순환한다. 땅에 떨어진 빗물은 흘러 흘러 강과 바다로 모이고, 증발돼 구름이 됐다가 다시 비가 돼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다. 지난가을 떨어진 낙엽은 소각장으로 향했거나 땅에 묻혔을 것이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낙엽을 이뤘던 유기물(탄소)은 연소나 미생물 호흡을 통해 대기로 빠져나와 이산화탄소의 모습으로 대기 어딘가를 떠돌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광합성 중이던 식물의 기공으로 다시 빨려가 이파리의 일원이 되거나 먹이사슬을 타고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와 언젠가 손가락 거스러미 자리에 새살로 돋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고, 떠난 자리에 다른 시간이 들어섬으로 지구는 살아 있는 행성이 됐다.

사람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명멸을 통한 자연스러운 순환을 거스르려 할 때 비극은 벌어진다. 12·3 비상계엄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도 그렇고, 전 세계 모든 이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도 그렇다. 기후 문제는 수억년간 땅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태워 공기 속 이산화탄소를 삽시간에 50%나 늘려놓고는 다시 있던 자리로 환원할 방도를 찾지 못해 벌어졌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활동 중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새로 들일지 묻는 사건이다. 착취적인 기업 활동,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짜여진 에너지·전력산업, 탄소 배출은 공짜라고 생각했던 인식은 퇴장하고, 자연을 회복하며 재생에너지에 맞게 전력 시장을 개편하고, 탄소에 합당한 가격을 물리는 새로운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소설 백년법은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집착으로 온 사회가 뼈 아픈 희생을 치른 뒤 마침내 구세대가 차례로 퇴장하며 사회가 재건되리라는 희망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우리는 다행히 퇴장이 사라진 사회로 완전히 미끄러져 내려가기 직전, 어렵게나마 질서를 되돌렸다. 기후정책에도 희망을 걸어본다. 오래된 에너지 체제와 산업구조, 변화를 미루는 정치적 관성들이 언제까지나 자리를 지킬 수는 없다. 2026년은 낡은 것들이 비켜나고, 새로운 질서가 제자리를 찾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퇴장이 있어야 다음 장이 열린다는, 너무 오래 잊고 지냈던 상식을 기후정책이 반드시 되살리기를 기대한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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