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과욕에 복지부는 상명하복
절차적인 정당성 확보 노력도 소홀
감사원이 어제 공개한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올 상반기까지 온 나라를 뒤흔든 의정 갈등과 의료대란은 “충분히 늘려야 한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문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애초 500명 증원을 보고했으나 윤 전 대통령 지시로 두 차례나 늘린 끝에 지난해 2월 ‘2025∼2029년 2000명씩 증원’을 골자로 한 의사인력 확대방안 발표에 이르렀다.
복지부는 2023년 6월 윤 전 대통령에게 2025∼2030년 500명씩 늘리는 방안을 보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매년) 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며 퇴짜를 놨고, 그해 10월 복지부는 4년간 5000명으로 증원 규모를 늘렸으나 “충분히 더 늘려야 한다”는 지시를 다시 받아야 했다. 거듭된 증원 지시에 복지부는 2035년을 의사 수급 균형 달성의 새 기준으로 삼아 부족한 의사 수를 1만명으로 추계했다. 당시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5년간 증원하기로 한 만큼 1만명을 5로 나눠 연 2000명을 제시했다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결국 2023년 12월 복지부는 2000명 일괄 증원안을 보고하면서 함께 의료계 반발 등의 이유로 단계적 증원안을 건의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난데없는 2000명 증원 결정은 대통령의 과욕과 복지부의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빚어낸 정책 참사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원은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중 해결 의지가 있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는데, 그렇더라도 의사 부족에 대비한 증원 규모를 6개월 만에 연 500명에서 연 2000명으로 고무줄 늘리듯 4배나 키우도록 종용한 것은 무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도 윤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재검토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조차 밝힌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는 대통령·대통령실 의중만 살피는 데 급급한 나머지 의사단체와의 합의를 깨고 증원 규모를 협의하지 않는 등 일방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통령실과 복지부가 이처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등한시한 결과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복귀하지 않았나. 당시 환자 단체는 의사 수 확대를 통한 필수·지역의료 확충을 열망하는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비판했는데, 결국 정부의 과욕이 국민 피해로 귀결된 셈이다. 최근 감사원에선 전 정권에서 행한 감사 결과를 뒤집는 일이 잦은데, 이번 감사 결과도 그런 운명에 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한국판 장발장’에 무죄](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7/128/20251127519404.jpg
)
![[기자가만난세상] AI 부정행위 사태가 의미하는 것](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7/128/20251127519346.jpg
)
![[세계와우리] 트럼프 2기 1년, 더 커진 불확실성](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7/128/20251127519384.jpg
)
![[조경란의얇은소설] 엄마에게 시간을](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7/128/20251127519352.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