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법이 그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재심에서 피고인 백모(75)씨와 딸(41)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구속 기소 후 16년, 대법원에서 징역 20년형이 확정된 뒤로는 13년 만이다. 지난해 1월 재심 결정 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긴 했으나 이미 12년 넘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니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검찰은 “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는데,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엉터리 수사와 기소에 대한 뼈저린 반성, 그리고 백씨 부녀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가 우선일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백씨 부녀는 200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가족과 이웃 주민이 마시게 해 2명을 살해하고 2명은 다치게 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던 부녀가 이를 감추고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두 사람을 구속한 뒤 재판에 넘겼다. 조사 과정에서 검찰은 무고함을 호소하는 부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강압적 태도로 일관했다. 재심의 무죄 선고 후 백씨가 “조사 때마다 수사관이 뺨을 때렸다”고 토로한 것을 보면 공포심과 모멸감이 어땠을까 싶다.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10년 2월 1심은 앞서 검찰이 사형, 무기징역을 구형한 백씨 부녀에게 둘 다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죄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부녀가 검찰에서 한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날 재심 재판부가 부녀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강압 수사로 만들어진 허위 진술”이란 이유를 든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상급심을 맡은 판사들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에만 충실했다면 굳이 재심까지 올 사안도 아니었다.
대선 과정에서 ‘검찰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법무부 등 정부는 대대적인 수사 제도 개편을 단행했다. 수사·기소 분리의 대원칙에 따라 검찰은 사실상 해체되고 그 수사권의 대부분은 경찰이 넘겨받게 됐다. 명실상부한 수사 주체가 된 경찰은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피의자 및 피고인 인권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검경 간의 건전한 상호 견제와 경쟁으로 이어져 국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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