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력·예산 이유로 대응 미뤄와
예고된 위험 방치, 언제나 재앙 초래
캄보디아 ODA 중단 주장은 안 될 말
한 차례 폭풍은 지났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초국가 스캠(Scam·사기) 범죄 얘기다.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 쿠알라룸푸르에서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와 만났다. 양국 정상회담은 답보 상태에 있던 ‘코리아 전담반’(한인범죄 전담 경찰)의 11월 가동 합의로 이어졌다. 반길 일이긴 하다.
곱씹어야 할 대목은 남았다. 알려진 것처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을 이용한 각종 사기와 납치 범죄가 활개 치는 현실은 이미 2∼3년 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조명됐다. ‘예고된 사건’에 가깝다. 올해 들어 지난 23일까지 캄보디아 관련 외교부와 경찰청에 접수된 납치·감금 의심 사건은 총 513건. 그러나 이달 초까지도 외교부는 이 중 몇 명이 귀국했는지, 소재 파악이 안 된 인원이 얼마인지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다. 지난 1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언제 인식했느냐’는 질문에 “지난주 정도”라고 할 정도였다. 개중에는 “캄보디아 경찰에 신고하라”거나 “근무시간이 아니다”며 피해자의 도움 요청을 외면하기도 했다. 심지어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제 발로 찾아온 한국인 로맨스스캠 범죄 총책을 현지 경찰에 통보조차 없이 그냥 돌려보낸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외교 공관에는 사명감 대신 무사안일이 넘쳐났다.
경찰도 다르지 않았다. 영사 조력 시스템만으로 스캠 범죄 대응에 한계가 있었음에도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경찰은 고작 3명에 그쳤다. 현지 경찰과 함께 수사를 진행하는 한인범죄 전담 경찰은 아예 없었다. 국제공조 강화를 외쳤지만 말뿐이었다. 경찰이 뭐 하느냐는 지적에는 인력과 예산 부족을 앞세웠다. 그러고는 귀를 막았다. 이번 캄보디아 사태는 외교부의 무능과 경찰의 태만이 만든 합작품이다. 돈벌이에 혹한 개인 잘못도 있긴 하나 정부가 사실상 방치한 것과 다름없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국정 혼란을 겪은 점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고위 공무원들이 정치권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보니 실무선에선 현안이 터질 때마다 땜질식 처방으로 국면을 모면하기 일쑤였다. 윤석열정부는 외교부와 경찰청, 국가정보원 등의 재외국민 안전 대응체계를 사실상 무너뜨렸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캄보디아 대사관의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 달라는 외교부 요청에 “업무량 증가가 인력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며 묵살한 것이 예다. 이재명정부 또한 사태 발생 때까지 대응체계 정비 작업에 소홀했다. 캄보디아 대사가 공석인 것을 비롯, 173개 외교부 산하 재외공관 중 42곳의 공관장 인사가 지연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재외국민 안전을 총괄하는 외교부 2차관 자리에 대선 캠프 인사를 발탁한 것은 뒷말이 무성하다. 특정 정권의 책임을 따져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문제는 태국, 필리핀, 라오스 등에서도 비슷한 수법의 한국인 대상 범죄 조직이 활개 치고 있다는 점이다. 내버려 둔다면 캄보디아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스캠 범죄 천국’이라는 경고를 외면하는 무관심과 망가진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예고된 위험을 방치한 결과는 언제나 재앙을 초래했다. 스캠 범죄는 정부에 대한 절망을 먹고 자란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 제기된 캄보디아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중단 논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사태가 ODA 자금 지원에 부정적 인식을 키운 것은 사실이다. 김건희씨가 어른거리는 사건도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한국의 3대 교역대상이다. 동남아가 중요한 이유는 미래 잠재력 때문이다. 미·중 중심 수출 구조에서 변화를 꾀한다면 동남아는 최적의 교역 파트너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이 동남아 시장 장악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를 리 없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범죄가 양국 간 지원과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해선 안 된다. 캄보디아에 대한 ODA 중단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다.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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