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으로 막은 부동산 대책
피해는 강남 아닌 중위층 집중
누구 위한 정책인가 되짚어야
공급 부족이라는 아찔한 상황에 이른 것은 진보든 보수든 정책당국의 책임이다.
우리가 아는 평범한 사람들은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좀 더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은 욕구, 그리고 미래를 위해 자산을 축적하고 싶은 욕구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구분하긴 어렵다. 누군가는 좋은 곳에 살기 위해 자산을 모으고, 누군가는 자산을 모으기 위해 좀 더 나은 주거지를 선택한다. 결국 이 두 가지는 자연스레 맞물린다. 가장 바람직한 건 두 욕구가 건강하게 순환하는 것이다. 종잣돈이 모이면 좋은 주거지를 찾고, 더 나은 곳에서 살면 자산도 느는 선순환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10·15 부동산 대책은 이 두 가지 자연스러운 욕구를 가장 인위적인 방식으로 제한했다.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 지역을 ‘토지거래허가제’ 등 삼중 규제로 묶고 대출을 대폭 축소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표현은 오히려 점잖다. ‘욕구 봉쇄’가 더 정확하다. 쾌적한 곳을 찾아 이동할 수도, 미래를 위해 자산을 형성할 수도 없게 된 상황, 과연 사람들은 이 상태를 오래 견딜 수 있을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 ‘욕구 봉쇄’의 타격이 자산소득 중위층 이하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사회학자의 직관으로 보자면 우리 사회는 이미 강남 3구와 마용성광, 과천·분당 등 핵심 입지에 터전을 둔 사람들과 그 울타리 밖에 남은 사람들로 양분되었다. 이미 갈아타고 집값 올라 욕구가 채워진 쪽과 욕구 충족은커녕 아직 허기진 배를 움켜쥔 쪽의 운명은 극명히 갈렸다. 공익의 이름으로 중위계층 이하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제약한 것, 이것이 10·15 대책의 본질이다.
“강남은 10억 올랐는데 내가 사는 곳은 1억도 안 올랐다.” “변두리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이젠 이사할 자유도 막는 거냐.” “서민은 내 집 마련 꿈도 꾸지 말란 건가.” 이런 목소리들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박탈된 욕구의 표현이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조바심과 불안이 주택 소유에 대한 더 큰 갈망을 낳고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집을 살 수 없으니 전·월세로 몰리겠지만, 집을 사 세놔주는 사람이 없으니 전·월세 품귀가 생기고 결국 전·월세 급등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의 근본 원인은 주택 공급의 절대 부족이다. 여기에 유동성 확대와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가세해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수요 억제책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이제 누구나 안다. 그쪽이 집권할 때마다 왜 집값이 폭등하는지, 이제 시민들은 학습했다. 정부 불신이 커지고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이 불만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이 불만의 중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지지층이었던 중위 이하의 시민들이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쾌적한 주거 여건은 절대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관적이다. 자신의 처지에서 적절한 눈높이의 삶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대다수 사람은 강남과 과천 입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감당 가능한 대출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조금씩 갈아타며 삶의 안정감을 찾아간다. 지금은 형편이 안 되지만 언젠가는 들어가 살 요량으로 불가피하게 갭투자를 택하기도 한다.
자산 형성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1년에 10억을 늘리지만, 다른 이는 1억, 아니 1천이라도 늘리면 감사하다. 이런 작은 성취와 만족이 있어야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책은 이런 자연스러운 희망의 사다리까지 끊어버렸다. 거주 이동과 자산 형성의 자유를 빼앗긴 시민들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정부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출을 제한했다’고 항변한다. ‘돈 많은 사람에게 더 강하게 규제했으니 오히려 역차별에 가깝다’는 논평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현실이 극도로 불평등한데, 형평성만 강조하는 건 공허한 자기변명에 가깝다. 첨단무기로 싸우는 쪽과 재래무기로 싸우는 쪽을 똑같이 대하는 것은 결국 강자를 돕는 일이다. 정책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이제 시민들은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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