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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그늘 없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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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3 23:07:26 수정 : 2025-10-13 23:07:24
권구성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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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볕이 뜨거운 날이면 정부세종청사 주위로 양산을 든 보행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늘이 귀한 세종에선 양산 없이 볕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태양 볕이 따가운 한여름에는 이른 아침에도 양산 없이는 걷기가 힘들 정도다. 정부청사가 세종에 터를 잡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거리의 가로수는 앙상하기만 하다. 그나마 볕을 피할 수 있는 건 교차로 모퉁이에 설치한 차양막 정도다.

전국 곳곳의 교차로에 차양막이 생기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서울 서초구가 서리풀 원두막이란 이름으로 설치한 것을 계기로 확산했다. 차양막이 처음 등장했을 땐 보행자에게 그늘을 조성해주려는 행정이 새삼 따듯하게 와 닿기도 했다. 서초구는 이 차양막으로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다.

권구성 경제부 기자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차양막을 본 외국인들의 반응은 사뭇 다양하다. 차양막을 설치할 공간과 예산을 두고도 어째서 나무를 심지 않느냐는 것이다. 도심의 나무가 숲처럼 울창한 일본이나 유럽의 도시를 떠올린다면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도시에서 그늘만큼이나 귀한 것이 나무다. 나무가 부족한 탓에 그늘이 귀해지고, 도시는 더 더워졌다.

한국에서 나무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도심의 ‘닭발나무’를 들 수 있다. 나무의 가지치기를 지나치게 한 나머지 앙상한 나뭇가지가 닭발처럼 기괴하게 보인다는 의미에서 붙은 멸칭이다. 나무의 숱을 한꺼번에 쳐내면서 관리 비용을 아끼게 된 지방자치단체와 간판이 가려지는 것을 꺼리는 주변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만든 결과물이다. 그렇게 도시의 그늘은 전보다 더 귀해졌다.

차양막과 비교했을 때 나무 한 그루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다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얻는 것도 많다. 나무는 도시의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것은 물론, 열섬현상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는 보행자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고령 운전자에 의해 발생한 역주행 참사 당시에도 많은 전문가가 가로수의 부재를 지적했다. 가로수가 있었다면 인명피해를 보다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는 특유의 탄력성을 가진 덕분에 충돌 시 완충 역할을 해내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강철 펜스보다 안전하다. 참사가 발생했던 보행로에는 펜스가 둘리어 있었지만, 가로수는 단 한 그루도 심어져 있지 않았다.

나무의 가장 긍정적인 기능 중 하나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데 있다. 뉴욕 센트럴 파크 설계에 참여했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공원을 짓지 않는다면 그만 한 크기의 정신병원을 짓게 될 것이라 설파했다. 옴스테드는 나무로 채워진 공간이 인간의 회복 탄력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봤다.

반면 한국에서 찾기 어려운 그늘은 이동 편의성을 최우선 과제로 둔 도시 설계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국가 역점 사업인 세종시마저도 보행자보다 차를 우선으로 설계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극단의 효율을 추구한 도시가 남긴 것은 거리를 걷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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