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國葬)이 고인의 서거 11일 만에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됐다. 여왕을 조문하기 위해 모여든 세계 각국 정상들이 사원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영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에게 맨 앞줄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뒷줄의 좌석이 배정됐다. 제일 좋은 자리는 고인의 장남인 찰스 3세 신임 국왕을 비롯한 영국 왕실 인사들, 그리고 덴마크를 비롯한 왕정 국가의 군주들에게 돌아갔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줄에 앉았다. 영국 왕실과 의전을 담당하는 외교부가 머리를 맞대고 며칠간 고민한 끝에 나온 좌석 배치도였을 것이다.

정작 분노한 이는 바이든이 아니고 당시만 해도 전직 대통령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바이든 부부가 뒷줄에 앉은 것을 “세계가 미국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자리에 앉히진 않았을 것”이라며 “미국의 (국제적) 위치 또한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같이 물러 터진 지도자가 미국을 대표하니까 외국 정부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정치든 뭐든 자리가 가장 중요하다(LOCATION IS EVERYTHING)”고 일갈했다. 그가 자존감이 얼마나 강한 인물인지 새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이후 처음 방문한 외국은 바티칸이다. 지난 4월26일 로마 교황청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에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참석한 것이다. 외신은 어떤 성격의 국제 행사에서든 단연 최고의 의전과 예우를 받길 원하는 트럼프에게 과연 어느 자리가 주어질 것인가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을 위해 마련된 VIP 전용 좌석 중에서도 가장 좋은 상석에 앉았다. 트럼프가 천주교 아닌 개신교 신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외신은 “트럼프를 위한 교황청의 배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14일 미국 뉴저지주(州)의 한 축구장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렸다. 파리 생제르맹(PSG)을 3-0으로 격파한 첼시가 우승을 확정한 뒤 트럼프는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첼시 선수단에 트로피를 전달했다. 문제는 선수들끼리 트로피를 치켜들고 포효하며 기쁨을 만끽해야 할 시점인데도 트럼프가 선수들 중앙에 서서 함께 손뼉을 쳤다는 점이다. 첼시 선수들은 언론에 “(트럼프가) 트로피 전달 후 시상대를 떠날 줄 알았는데, 계속 머물고 싶어 했다”며 “조금 혼란스러웠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자리를 생명처럼 중시하는 것은 잘 알겠으나, 그렇더라도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는 ‘낄끼빠빠’의 원칙만은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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