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최근 한 방송에서 ‘소신 발언’의 이유를 밝혔다.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엔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누군가는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조희대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선고 직후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판사 중 한 명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때 역시 목소리를 냈다.
판사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다만 그 자유는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범위 내에서만 행사돼야 한다. 개별 판사의 발언이 법관 다수의 여론으로 오인될 수 있다. 판사의 한마디는 그 무게만큼 신중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판사의 공개 발언에 대한 허용 기준이 엄격히 요구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애리조나주 매리코파 카운티의 수산나 피네다 판사는 페이스북에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며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그룹 공개’로 올렸는데, 지난해 견책 처분을 받았다. 주 사법행동위원회는 “문제는 그녀가 어떠한 정치적 또는 사회적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면서 “공개적으로 그러한 견해를 밝히거나 극도로 논쟁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합리적 일반인으로 하여금 그녀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카운티의 마크 코헨 판사는 지난해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와 최저임금 인상 등을 지지하고, 공화당 정치인을 비판한 페이스북 게시글 66건으로 무급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는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항변했다. 사법징계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관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면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한다”고 판단했다.
미국 사법기관의 잇단 징계는 특정 견해를 억압하려는 게 아니다.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원의 책무에서 비롯된 것이다. 뉴저지주 대법원은 지난해 ‘법관 SNS 사용 지침’을 발표하며 △계속 중이거나 임박한 사건에 대한 편파적 발언 △정치적·논쟁적 사안 언급 등을 금지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법치주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조치다.
논쟁적 현안에 대한 판사의 발언은 다른 견해를 가진 국민에게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으로 번진다. 이런 발언이 반복될수록 사법 신뢰는 조용히 금이 간다.
반복되는 공개 발언 속에서 정작 판결의 허점을 드러낸 사례도 있다. 수년째 SNS에 일상적으로 정치·사회 평을 올리는 A판사는 선고 12일 뒤 판결문 주문을 ‘징역 1년6월’에서 ‘징역 1년’으로 바꾸는 경정을 했다. 각종 공개 발언을 이어온 B판사는 최근 판결문에 ‘법령 적용’을 누락해 사건이 파기환송됐다. 전·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대형 사건은 아니지만 당사자들에겐 기본권이 직결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에 목소리를 낼 때보다 자신의 판결문 하나에 더 많은 집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대목이다.
국민이 사법권을 판사에게 맡긴 까닭은 분명하다. 누구든, 어떤 사건이든 판사가 공정하고 성실하게 판단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판사에게도 안심하고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사법신뢰를 해치는 순간 판사의 소신 발언은 존중받을 수 없다. 판사의 언어는 결국 판결이며, 그 언어는 공적 책임으로써 완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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