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뒷산에 밤하늘이 환할 정도로 불기둥이 벌겋게 보이더라고. 급히 빠져나온다고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나왔어.”
지난달 29일 대구 북구 매천동 팔달초등학교의 산불 임시대피소에서 만난 조학이(72) 어르신은 “집이 모두 불에 탈까 봐 밤새 잠을 설쳤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대구 도심에 있는 함지산 자락에서 난 산불은 초속 15m의 강풍을 타고 인근 조야?노곡동에 이어 서변동까지 번지면서 인근 주민들을 혼돈에 빠뜨렸다. 불길이 민가가 몰린 곳까지 확산한 탓에 긴급대피자만 5600명에 달했다. 집 안에 머물던 조 어르신도 구청 공무원 안내에 따라 몸만 급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구 도심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한 건 1989년 팔공산 산불 이후 36년 만이다. 산림이 타면서 하늘 높이 치솟은 화염은 바람을 타고 대구 전역은 물론 6~7㎞ 떨어진 경북 경산시까지 위협했다. 산불 발화지점 부근에선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과 이례적인 도시형 산불 현황을 전하려는 취재진 차량 등으로 아비규환과 다름없었다. 재난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산림 당국은 야간 비행이 가능한 수리온 헬기를 투입하면서 일몰 후 진화작업을 이어갔다. 도심 아파트단지로 번질 경우 인명·시설 피해는 상상하기 무서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밤사이 화마는 잦아들었고, 발화 23시간 만인 지난달 29일 오후 1시쯤 주불이 잡혔다. 그렇지만 6시간 만에 재발한 산불은 이달 1일 오전에서야 완전히 꺼졌다. 축구장 434개 크기(310㏊)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현장 진화대원들은 도시형 산불의 경우 농촌지역과 달리 순식간에 불씨가 번져 다중이 밀집한 시설로 쉽게 확대될 수 있어 더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2013년 3월 경북 포항시 북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대표적이다. 당시 포항시 4개 동을 휩쓴 산불로 1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강원 강릉시 난곡동 산불은 건물 406동을 파손했다.
우리나라 도시 대부분이 산을 끼고 있는 만큼 언제든지 산불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전에 없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산불은 실화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재난이다. 하지만 사람이 낸 산불은 자연의 힘을 빌려 몸집을 키운다. 도시형 산불은 봄철 이상고온과 강풍 등이 주된 원인이다. 기후변화 등으로 도시형 산불은 앞으로 빈번해질 전망이다. 진화 장비와 인력 확보 및 대응 시스템 구축 등 변화한 산불 양상에 맞춘 철저한 예방·대응전략이 필요한 때다.
산림 공무원들 사이에선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장 싫고 5월 중순 아카시아가 제일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긴장과 안도감 속에 북구 한 성당 외벽에 걸린 ‘산불조심’이란 현수막 글귀가 이번 한 고비를 넘긴 주민들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경찰이 이번 산불의 원인을 방화나 담뱃불 실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는 만큼 산불 범죄 관리체계에 대한 근본적 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정부와 소방당국, 지자체는 이 또한 귀 담아 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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