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휴대전화 너머로 들은 황경화(56)씨의 밝은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가을이지만, 전날 ‘임금 근로자로 일하다가 자영업에 나선 50대 이상 절반은 최저임금 미만의 소득을 번다’는 기사를 쓰면서 그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대기업에 29년간 재직한 황씨는 2022년 회사를 나와 아로마공방을 차렸다. 얼마 전 기사에서 언급한 ‘업무와 무관한 분야로 창업에 나선 50대 이상’의 당사자다. ‘불경기에도 공방을 계속 운영하고 계실까.’ 우려와 달리 그는 “쉽진 않아도, 공방은 죽을 때까지 할 것”이라고 했다.

‘요샌 정년 연장이 제일 사회적 관심사’라고 하자 황씨는 “그거는 진짜 빨리 나와야 되지. 벌써 나왔어야 하는 게 맞는 거야”라고 맞받았다. 그는 “일률적인 법적 정년 연장은 좋은 해법은 아닌 것 같다”고 소신을 밝혔다. ‘정년 연장 찬반 여론조사’의 소수 의견인 탓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황씨는 업무 능력에 변화가 오기 마련인데 같은 직무, 같은 환경에서 그대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라고 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 예전만큼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그걸 꾸역꾸역 연장하는 것도 굉장히 자존감 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본인이 익숙하고 편했던 회사를 정년 전에 나온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처럼 기업과 근로자가 협의해 재고용을 포함한 계속고용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길이 빨리 열려야 회사에 남은 동년배 동료들이 다시금 활력을 느끼며 출근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모든 논의를 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계속고용위원회는 개점휴업 상태다.
12·3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잠정 중단해서인데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과는 정년 연장 관련 정책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엔 민주노총도 법적 정년 연장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선별적 재고용을 주장하는 경영계와 현행 60세인 법적 정년을 올려야 한다는 노동계 간 간극은 지난해 2월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 뒤 한 발도 좁혀지지 않았다.
문제는 노사가 서로 양보할 유인이 없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시한 내에 타결하지 않으면 전년 최저임금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노사가 어떻게 해서든 입장 차이를 좁혀나간다. 하지만 계속고용 같은 현안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계속고용 문제가 마치 노사 간 승패의 문제가 돼 버린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사노위와 정치권이 국민연금 개혁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얼마 전 여야가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를 이뤄냈는데 사실 이 문제 역시 2019년 경사노위에서 다뤄졌다. 당시 특위는 3가지 안을 제안했고, 다수 안은 소득대체율 45%와 보험료율 12%이었다. 6년이 흐르는 동안 연금 재정의 적자는 하루에 885억씩, 1년간 32조원씩 쌓였다.
계속고용 문제도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지금처럼 시간만 흘려보낸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누적될 수 있다. 합의를 끌어내는 주체들이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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