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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영화 한 편이 도착했다. 토마스 카일리 감독의 SF 판타지 “애니멀 킹덤”(2025)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말다툼하는 프랑수아·에밀 부자의 모습이 보이고 이어서 마비된 도로 위에 서 있던 구급차를 부수고 탈출하는 ‘조류 인간(birdman)’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수아는 ‘세상이 미쳤다 strange days’고 탄식한다. 말 그대로 세상은 아비규환이다. 문명 세계의 한복판에 반인반수 돌연변이가 창궐하고 이 괴이한 돌연변이와의 공존이 이미 뉴노멀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흔히 장르 영화는 평온한 공동체에 발생한 위기와 무질서를 주인공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회복시키는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무질서와 위기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서사의 엔진을 작동시킨다. 반인반수 생명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냥, 수거, 격리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통제 불가능으로 치닫고 프랑수아 가족 앞에도 위기는 닥친다. 아내는 이미 돌연변이가 되었고 아들 에밀마저 늑대로 변해 가고 있다. 프랑수아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막아내고 가족을 정상으로 되돌리려 하지만 상황은 되돌리기 힘들다. 둑이 터지듯 열려버린 공동체의 지옥문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터진 지옥문으로 거세게 밀려드는 재난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극 중 상황은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시키지만 카프카의 세계는 탈주가 불가능한 겹겹으로 폐쇄된 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벌여놓은 질문의 서사를 단순한 방법으로 수습하고자 하는데 이 영화가 허용하는 상상력이 거기까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조류 인간이다. 영화는 생물학적으로 치밀한 연구와 관찰을 동원해 그가 새로 완벽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의 몸짓, 그의 울음소리, 그의 뼈와 근육의 움직임은 새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 영화는 인간이 동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인간적 삶’이라는 테마를 ‘범생명체의 존재 가치’라는 문제로 슬그머니 치환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실존, 삶에 대한 질문의 복잡성은 생명 그 자체의 존재 가치를 설파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 영화에 희망은 있는가? 영화는 프랑수아·에밀 부자가 교환하는 눈빛과 미소에서 지옥을 박차고 나갈 희망의 탈출구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사실 그것은 너무 쉬운 해결책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꽉 막힌 세상에서 그렇게 손쉬운 해결책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눈빛의 교환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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