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中 ‘불통’ 닮아가는 주중대사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4-05-06 00:15:54 수정 : 2024-05-06 00:15:5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질의응답 없이 진행 언론브리핑
그마저도 ‘대사갑질’ 보도 뒤 취소
특파원 대사관 출입마저 통제해
“소재지 특수성 때문” 궁색한 변명

매월 첫 번째 월요일,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는 기묘한 행사 같은 것이 열린다. 공식적으로는 주중대사의 특파원 대상 언론 브리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브리핑은 본 적이 없다. 이를 달리 칭할 말도 떠올리기 힘들다. 그러니 부득불 ‘행사 같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그날이 되면 커다란 회의실에 정재호 주중대사와 대사관 관계자 10여명이 착석하고 맞은편에 특파원들이 앉는다. 이 행사는 대략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데, 보통 정 대사 본인이 지난 한 달 동안 무슨 자리에 참석해 누구를 만났는지 등으로 시작해 현안 설명을 거쳐 사전에 받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입을 여는 사람은 오직 정 대사 한 사람뿐이다. 종이를 넘겨가며 준비된 대사를 읽는 정 대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때로는 재미없는 대학수업 같다가도 어떤 때는 일종의 부조리극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최근 누군가 ‘현장에서 질문을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정 대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브리핑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모양인데 기자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의 일로, 정확히 어떤 것 때문인지는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바 없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말 정 대사의 갑질 의혹이 보도됐다. 공교롭게도 4월 ‘행사’를 앞둔 시점이라 사전 질문일지언정 이에 대한 정 대사의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사관은 의혹이 불거진 다음날 ‘일신상의 사유’로 취소를 통보해 왔다.

그러더니 지난달 말에는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까지 제한했다. 대사관은 브리핑 참석 이외의 취재를 위해 대사관 출입이 필요할 경우 최소 24시간 전 인원, 취재 목적 등을 대사관에 신청하라고 공지했다. 그러면 신청한 사항을 검토한 뒤 대사관 출입 가능 여부와 관련 사항을 안내해 준다는 것인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대사관 측은 “최근 보안 관련 문제가 발생해 브리핑 외 시간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신분 확인이 안 된 사람이 무단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라는 이유를 댔지만 핑계가 군색하다. 일부 언론이 출근 시간 갑질 의혹에 대한 대사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 대사관 뜰 안에서 현장 취재를 시도한 것을 ‘보안 문제’로 덮어씌운 것이다.

이 같은 행태를 보고 처음에는 정 대사의 불통이 친구로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대통령실 출입 도중 도어스테핑이 중단된 경험 탓에 더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한 데 이어,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도 개최하는 등 소통에 나서는 모습이다. 특히 기자회견을 앞두고 “대통령이 질문을 가려 답한다든지 질문을 가볍게 터치하듯 답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으로 안다”, “대통령이 진솔하게 하실 수 있는 답은 가급적 다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은 정 대사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그렇다면 일련의 사태는 친구가 아니라 주재 장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지. 대사관은 추가로 내놓은 출입 조치에 대한 안내문을 통해 “중국 소재 대사관의 특수한 보안상 이유를 감안해 특파원의 임의 출입을 자제한다”고 했다. 대사관이 ‘중국 소재’라는 특수성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변죽을 울리며 트집을 잡는 일 처리 방식이 중국 당국과 닮아 있다는 뜻이다.

몇 년 전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보복하면서 이유를 직접적으로 대는 대신 현지 롯데 유통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소방·위생점검에 나섰다. 이를 통해 결국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된 롯데는 중국 내 대부분의 사업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대사관이 ‘보안 문제’ 등을 들어 취하는 조치가 당시 중국 당국의 소방·위생점검과 비슷하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