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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문화의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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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성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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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는 해마다 한두 번씩 찾는 곳이다. 서해나 남해의 바다도 좋지만, 열차로 떠날 수 있는 동해만의 매력이 있어서다. 그중에서도 정동진역은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자연히 들르는 곳이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곳이지만, 정동진만의 정취가 담겨 있다.

그런 정동진역을 조만간 새로 짓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존 역사(驛舍)는 남겨두고, 그 옆자리에 6배 규모로 신축 역사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설계 용역에 들어가 연내 착공할 것으로 보인다.

권구성 문화체육부 기자

정동진역 신축을 추진하는 것은 관광객 감소가 주된 이유다. 1995년 모래시계의 인기로 전국적인 명소가 됐지만, 드라마가 종영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은 예전처럼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니다. 2017년 개통된 강릉행 KTX 노선이 정동진역을 경유하지 않는 것도 이용객 급감을 불러왔다.

정동진역이 예전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건 안타깝지만, 그곳에 새 역사를 짓는 것에는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기존 역사를 남겨둔다고 하지만, 그 역할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신역사와 구역사가 나란히 있는 서울역이나 신촌역을 보면 그렇다. 사람의 온기가 스며들지 않는 건축물은 쉽게 낡고 부식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에게 잊힌다.

지방자치단체는 정동진역 기존 역사가 낡고 오래된 탓에 관광객의 불편이 크다고 설명한다. 역사를 새로 지으면 일일 관광객이 900명 수준에서 3000명 규모로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내하고 정동진역을 찾는 것은 이곳에 깃든 역사(歷史)가 있어서다. 정동진역은 1962년 석탄 운반을 목적으로 지어진 간이역이다. 모래시계로 명소가 되기 전에는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폐역될 뻔한 적도 있다. 이런 풍파를 겪어온 60년 세월이 오늘날의 정동진역을 만든다. 정동진역을 새로 짓는다면, 다시 60년을 내다봐야 한다.

유럽에 가면 낡고 오래된 건축물로 도시가 채워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건축물을 지키려는 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은 집념에 가깝다. 때로는 그것을 지키기 위한 시간과 비용이 새로 짓는 것보다 배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효율성이 쌓여 역사가 되고 문화적 자부심이 된다.

국내에서는 문화적 자부심을 위해 어떤 노력과 희생을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낡고 오래됐다는 이유로 그것을 허물고 바꿔버리는 일에 익숙하다. 실제 그런 변화를 원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년 전부터 떠오른 ‘힙스터’ 문화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서울 시내 낡고 불편한 익선동이나 망원동, 문래동과 같은 곳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도 생각해 봐야 한다.

건축가 김소연은 책 ‘경성의 건축가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존할 가치는 번듯하게 잘 지은 상류층의 건물이나 건축 양식을 잘 표현한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계층이 먹고 자고 일하고 투쟁하고 죽어 간 공간에도 있다. 보존은 문화의 두께이고, 문화는 다양성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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