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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안산 선수와 젠더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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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03 22:53:56 수정 : 2021-08-03 22: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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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머리 등 이유로 페미니스트 공격 당해
혐오발언=폭력… 디지털공론장도 시민성 요구

2020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매체 게시 글을 근거로, 국내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그를 비난하는 글이 폭주하고 있다. 몇몇 젊은 남성이 젠더 갈등의 차원에서 던진 여성 혐오적 발언을 국내외 언론이 보도했고, 이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비방은 비논리적이다. 머리 길이와 몇몇 단어를 토대로 남성 비하라고 비난하는 것은 글 쓴 사람의 편견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의 머리 길이와 그가 사용하는 단어는 문화적 상징을 내포하지만, 그 상징의 의미는 결코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이 받는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려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페미니스트라 하는데,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 사회학

편견과 고정관념에 바탕을 두고 타인을 말로 공격하는 행동은 혐오 발언이다. 혐오 발언은 말로 행하는 차별의 한 형태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을 부당하게 공격해 차별하는 것이다. 혐오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면 상대에게 고통을 준다. 그러므로 혐오 발언은 폭력이다.

민주사회 시민은 공공영역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담론이 오가는 공공영역을 공론장(公論場)이라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공공영역은 디지털 전환을 경험했다. 전통적 공공영역뿐 아니라 디지털 공공영역이 공존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대화방이 디지털 공론장이 됐다.

공론장에서 오가는 말의 논조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공론장에서 오가는 담론 중에는 극단적 입장이나 거친 표현을 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디지털 공론장에서는 자기 신상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그대로 표출한다. 타인의 관심을 끌면서 자신의 주장을 밝히기 위해서는 논지를 선명하게 만들어야 하므로,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혐오 발언을 내뱉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그 과정에서 맹동주의(盲動主義)가 종종 출현한다. 원칙과 주관이 없이 덮어놓고 남이 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들은 혐오 발언을 퍼 나르면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은 비난하고 공격한다. 혐오 발언이 개인의 단순한 의사표시를 넘어 이처럼 집단행동으로 확대되면 사회적 폭력이 된다. 외신은 안산 선수에 대한 혐오를 ‘온라인 테러’라고 요약했다.

디지털 공론장에서도 시민성이 요구된다. 디지털 공론장은 결코 익명의 공간이 아니다.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차별금지법, 혐오방지법 등 사회적 규제도 필요하겠지만, 건전한 토론 문화를 조성하려는 개인적·집단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극단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아직은 몇몇 젊은이의 사례이지만, 앞으로 젠더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젠더 갈등의 이면에는 사회이동의 기회가 줄어든 선진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구는 더는 늘지 않고, 사회적 경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는 교육, 일자리 등 희소한 사회적 자원을 둘러싼 무한 경쟁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그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됐고, 그 좌절감을 공격적 분노로 분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부 젊은이의 극단적 행동 이면에는 미래 전망 부재라는 암담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젊은이에게 미래 전망을 제시하며 사회통합을 주도해야 할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오히려 악용하고 있다. 차별과 배제로 혐오를 부추기고, 시민을 갈라치기를 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려 시도한다.

사회 갈등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할 지혜가 필요하다. 사회적 경쟁의 심화가 젠더 갈등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맞다면, 경쟁을 완화할 방안부터 모색해야 한다. 사회 갈등의 원인을 밝혀 해소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젠더 갈등은 고질적 사회 갈등으로 정착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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