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로 인력 부족 심화
취업 걱정 줄자 법학계 지원 13%↑
韓 청년고용률은 29개월 연속 하락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한국에서는 한때 이 말이 유행했습니다. 줄여서 ‘문송합니다’라고 쓰기도 하죠. 인문·사회계열 전공자가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2015년쯤 신조어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신약 임상시험 청탁 의혹과 관련한 질의를 받고 “저는 문과다. 치료제에 대한 성능이라든가 그런 것을 알 수가 없다”고 답해 이 표현이 다시 소환됐더랬습니다.
◆구직자 우위에…문과 인기 회복
일본은 한국과 달리 고용 시장에서 ‘취업자 우위’ 흐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지난 8월 실업률은 2.5%였습니다. 일손 부족 현상이 심해 편의점, 음식점 등 아르바이트가 외국인들로 채워지고 있고, 대학 졸업예정자들은 다수의 회사로부터 취업 내정을 받은 상태에서 기업을 ‘골라 가는’ 실정입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임금 인상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도 잊을 만하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문·이과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 6일 요미우리신문에는 <대학입시 동향 문과 인기…취업 활동 ‘구직자 우위 시장’ 반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문송’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대형 입시학원이 2027학년도 대입 공통시험 지원 경향을 분석했더니 “문과 전반과 데이터사이언스 계열이 인기”였다면서 “취업 활동에서 학생에게 유리한 ‘판매자 시장’의 존재가 배경”이라고 요미우리는 전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흔히 쓰는 판매자 시장이란 말은 기업의 수요(구인)가 공급(구직)보다 많아 노동력 판매자(구직자)가 취업·이직을 하는 데 유리한 상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구직자 우위 시장이란 뜻이죠.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 8월 유효구인배율은 1.18배였습니다. 구직자 한 명당 1.18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기업 취업 정보 사이트 마이내비에 따르면 내년 봄 졸업 예정인 대학생·대학원생의 내정률은 9월말 현재 86.3%였다고 하네요.
◆“법·경제·경영 등 취업 시 선택지 많아”
요미우리에 따르면 올여름 모의고사를 토대로 한 분석에서 법학계 지원자가 전년 대비 13% 증가하는 등 인문계 인기는 전반적으로 높아졌습니다.
반면 이공계는 분야별로 편차가 컸습니다. 방대한 정보·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해석과 결과를 도출하는 학문인 ‘데이터사이언스’ 학과 신설 붐이 일고 있는 이학계열은 17%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지원자가 급등했던 간호(-23%), 보건(-8%) 계열은 감소세가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구직자 우위 시장과 문과 인기의 회복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일본 대입 전문 학원 요요기제미날의 기도 아오이 교육정보실장은 “이과는 취업에 유리하지만 주로 전문영역의 취업이 이뤄진다”며 “구직자 우위 시장에서는 취업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선택지가 넓은 문과 지망생이 늘어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과의 경우 고교 졸업 즈음 선택하는 학과와 향후 진로 간 연관성이 큰 반면, 문과는 대학 3학년때쯤까지 자신의 적성·능력 등을 고려해 직장을 결정할 여유가 생긴다는 뜻으로 해석됐습니다.
일본 커리어리서치랩이 2028년도 졸업예정자 14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전공과 관련된 인턴십 등 커리어 형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은 이과 79.6%, 문과 46.2%로 이과가 훨씬 높았던 반면, ‘전공과 무관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는 답은 문과 76.7%, 이과 55.1%로 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생산인구 감소가 만든 역설
문과의 인기는 올해 4월 입학한 2026학번들 사이에서도 나타난 현상입니다. 특히 법·경제·경영·상학부 등 향후 진로 선택폭이 넓은 실용 사회과학의 인기가 높았다고 하네요.
메이지대는 2026학년도 지원자 수가 2025학년도를 100%로 봤을 때 문학부 109%, 국제일본학부 110%, 법학부 107%, 정치경제학부 108%였던 반면 이공학부는 93%, 종합수리학부는 91%로 감소해 ‘문고이저’(文高理低: 문과 강세·이과 약세)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대형 입시학원 슨다이예비학교의 시로타 다카시 입시정보실장은 지난 1월 아사히신문에 “무조건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수험생이 줄고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우선시해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전제는 구직자 우위 시장의 존재입니다.
일본 정부와 대학은 그간 인공지능(AI) 시대에 디지털 대응 인재를 늘리겠다며 이공계 정원을 확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험생 사이에서는 문과 인기가 회복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과 회귀’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최근 이어졌던 이과 우위 구도가 누그러지고 문·이과 균형이 다시 맞춰지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구직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문과 인기가 회복되는 것은 저출생·고령화 영향이 큽니다. 일본 합계출산율은 1.14명입니다. 10명 중 3명은 노인이고,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4년 59.6%에 그칩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일본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지난해 기준 69.2%로 일본보다 큽니다.
한국은 청년실업 문제가 여전히 심각합니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4.0%로 29개월 연속 하락했습니다. 실업률은 5.4%로 9월을 기준으로 할 때 4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청년들이 기업을 골라가는 시대가 올지 모릅니다. 그때는 ‘문송합니다’도 옛말이 되겠죠. 하지만 그게 마냥 반길 일일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일자리가 넘치는 이유가 역동적 경제성장 때문이 아니라 일할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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