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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보다 먼저 묻는 ‘GPU 사용권’… 연산자원이 인재 행선지 가른다 [이귀전의 왜-인재전쟁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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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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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경력과 직결되는 대형 모델 경험… GPU 접근권이 새 영입조건
영국·캐나다·미국 공공 연산망 확대… 中은 인재·연구조직까지 묶어 지원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기술에서 사람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첨단 모델을 직접 만들어 본 연구자는 극소수이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빅테크 최고경영자가 직접 영입전에 뛰어들고 수천억원대 보상과 대규모 투자를 내건다. 인재 확보는 개인 채용을 넘어 핵심팀과 기술을 함께 가져오는 거래, 국가의 직접 스카우트, GPU·데이터·연구조직까지 묶은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인재전쟁’ 시리즈는 메타·구글·오픈AI·애플의 인재 쟁탈전에서 출발해 중국의 인재 귀환과 유출 방어, 유럽의 두뇌 순환, 각국 정부의 영입전과 공공 연산자원 경쟁을 따라간다. 또 대학과 기업을 잇는 인재 공급망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인재 유출과 숙련인력 부족의 현실, 해외 인재 유치와 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대응을 짚으며 한국이 세계 인재전쟁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살펴본다.

오픈AI 연구자 노엄 브라운은 2023년 이직을 검토하면서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점심을 먹고 샘 올트

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포커를 쳤다. 한 투자자는 전용기를 타고 그를 찾아왔다. 브라운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가장 많은 보수를 제시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는 “금전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며 자신이 원하는 연구에 사람과 연산자원을 투입하겠다고 한 오픈AI를 택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인재의 이직 조건이 연봉과 직책을 넘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얼마나 쓸 수 있느냐로 확장되고 있다. 어떤 문제를 연구할지뿐 아니라 필요한 GPU를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실패한 실험을 다시 수행할 수 있는지, 함께 일할 팀에도 충분한 연산자원이 제공되는지가 연구환경을 좌우한다. 최첨단 AI 연구에서는 연구비와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규모 연산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제 모델을 만들어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GPU 접근권은 연구 성과뿐 아니라 연구자의 경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첨단 모델을 만들려면 수백∼수천개의 GPU를 연결해 학습시키고, 성능이 나오지 않으면 데이터와 모델 구조, 학습방식을 바꿔 다시 실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은 논문이나 이론만으로 얻기 어렵다. 대규모 모델을 직접 학습시켜 본 연구자가 다시 최첨단 연구에 투입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연산자원을 가진 조직이 다음 세대의 숙련 연구자까지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GPU 격차가 연구경험 격차로

 

대규모 연산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연구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실제 규모의 모델로 검증하기 어렵다. 소규모 모델에서 작동한 방법이 모델 규모를 키웠을 때도 같은 성능을 내는지 확인하려면 다시 대규모 학습을 해야 한다. 한 번의 학습이 실패했을 때 원인을 찾아 조건을 바꾸고 재실험하는 데도 추가 연산자원이 필요하다.

 

반대로 충분한 GPU를 확보한 연구조직에서는 모델 크기와 데이터, 학습방식을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실험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 GPU가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어떤 수준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작업환경이 된 이유다.

 

기업들의 인재 영입 조건에도 이런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높은 보수와 직책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원하는 팀을 꾸릴 수 있는지, 대규모 모델 학습에 필요한 연산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까지 영입 조건이 된다. 브라운이 더 높은 보수보다 사람과 연산자원을 자신의 연구에 투입하겠다고 한 오픈AI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대규모 모델을 직접 다뤄볼 기회가 소수 빅테크에 집중될 경우다. 연산자원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연구자는 대형 모델의 학습과 실패, 개선을 반복하며 경험을 쌓고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반면 대학이나 초기 신생기업에서는 같은 규모의 실험 자체가 어렵다. GPU를 쓸 수 있느냐의 차이가 연구경험의 차이가 되고, 다시 연구자의 경력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각국 정부가 공공 연산시설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해외 인재에게 직접 GPU를 지급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대학과 연구기관, 신생기업에서도 대규모 실험이 가능하도록 공공 연산자원에 접근할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연구자가 최첨단 모델을 직접 다뤄보기 위해 반드시 거대 기술기업으로 옮겨야 하는 구조를 완화하는 인재정책인 셈이다.

◆英, 작은 실험부터 대형 연구까지 ‘연산 사다리’

 

영국은 연구자의 연구 단계와 필요한 연산량에 따라 공공 GPU를 배정하는 ‘연산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컴퓨트 로드맵’에서 공공 연산시설의 규모가 부족해 일부 연구자들이 해외 시설을 이용하거나 연구 목표를 낮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공 AI 슈퍼컴퓨터망인 ‘AI 연구자원(AIRR)’을 확대해 2030년 연산능력을 2025년의 20배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AIRR의 이용 통로는 연구 단계에 따라 나뉜다. AI 슈퍼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연구자가 코드와 알고리즘을 시험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최대 1만 GPU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제품 개발 초기 단계의 중소기업에는 최대 2만 GPU시간을 지원한다. 더 큰 연구·개발 프로젝트에는 6개월 동안 5만∼15만 GPU시간을 배정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GPU 한 개를 한 시간 사용하는 양이 1GPU시간이다. 15만 GPU시간이면 GPU 1000개를 150시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과학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는 대형 연구에는 별도 프로그램을 통해 한 과제에 최대 140만 GPU시간까지 제공했다.

 

중요한 것은 GPU를 연구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게 아니라 연구가 커질수록 더 큰 연산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든다는 점이다. 소규모 자원으로 아이디어를 시험한 연구자가 더 큰 프로젝트를 신청하고, 대학에서 시작한 연구가 창업으로 이어진 뒤에도 공공 연산망을 이용해 제품 개발을 이어갈 수 있다. 대형 모델을 실제로 다뤄본 경험을 빅테크 밖에서도 쌓을 수 있게 하는 구조다.

◆GPU 비용·접근권까지 국가 인재정책으로

 

캐나다는 자체 연산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신생기업의 GPU 이용비를 정부가 보조한다. 캐나다 정부는 최대 3억캐나다달러 규모의 ‘AI 연산 접근기금’을 통해 중소기업이 외부의 고성능 AI 연산자원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5월 첫 사업으로 44개 기업의 프로젝트에 6600만캐나다달러를 배정했다.

 

AI 신생기업이 정상급 연구자를 영입했다고 연구가 곧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연봉이나 지분을 약속해도 대규모 모델 학습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연구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기 어렵다. 캐나다는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연산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해 빅테크가 아닌 기업에서도 AI 연구·개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체 대규모 AI 연산시설을 확충하는 사업도 함께 추진 중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AI 연산시설을 가진 미국도 대학과 신생기업의 접근 문제를 국가 연구정책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AI 행동계획’은 대규모 연산자원을 이용하려면 초대형 클라우드업체와 장기계약을 맺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비용이 대부분의 대학과 상당수 신생기업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다고 진단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이끄는 국가AI연구자원(NAIRR)은 민간기업과 연방기관이 보유한 컴퓨팅 자원과 AI 모델, 데이터, 소프트웨어를 대학과 연구자에게 연결한다. 2024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뒤 연구·교육 현장의 이용을 확대했고, 올해는 시범사업을 장기적인 국가 연구 인프라로 전환하기 위한 운영체계 구축에도 들어갔다. 민간 빅테크가 보유한 연산자원을 대학 연구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연결망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연산자원 지원을 기업과 연구조직 육성에 직접 결합하고 있다. 상하이시는 지난해 AI 산업 육성책을 통해 지능형 연산시설을 빌리는 기업과 연구기관에 임차료의 최대 30%를 지원하는 6억위안 규모의 연산자원 이용권을 편성했다. 대형언어모델 이용에는 3억위안 규모의 지원책을 별도로 마련했다.

 

인재가 새로운 연구조직을 만드는 데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 상하이는 전략적 AI 인재가 새로운 AI 연구개발기관을 설립할 경우 사업 목표와 과제에 따라 3∼5년에 걸쳐 최대 5억위안을 지원한다. 연구자 개인에게 높은 보수를 제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구자가 팀을 꾸리고 실제 연구를 수행할 조직과 연산환경까지 함께 마련하는 방식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이슈를 한발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뉴스의 전면에 드러난 사건과 숫자뿐 아니라 그 뒤에서 움직이는 사람과 이해관계, 변화의 맥락까지 함께 살핍니다. 정치·경제·사회 현안을 짚는 기획과 분석부터 여행지의 새로운 풍경, 일상 속 흥미로운 장면까지 폭넓게 담습니다. 무겁고 가벼운 세상의 여러 표정을 따라가며, 익숙한 뉴스 속에 숨은 ‘왜’를 찾아 독자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거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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