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안정 효과 미미한 정치적 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규모 러시아산 경유 거래에 전격 합의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 동맹국은 전쟁 장기화를 부추기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실제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미국 행정부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즉시 30만t을 시작으로 11월 중 50만t을 추가하는 등 총 480만t 규모의 경유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도 이에 맞춰 내년 4월7일까지 러시아산 경유의 수입과 거래를 허용하는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하며 대러 제재를 한시적으로 풀었다. 최근 미국 내 디젤 가격이 70%가량 폭등하자 중간선거를 목전에 둔 트럼프 행정부가 민심 악화를 막기 위해 제재 완화 카드까지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진영은 이번 조치에 즉각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엑스(X)를 통해 “러시아가 석유제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끝내야 할 전쟁을 장기화하도록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푸틴에게 주는 생일 축하 선물 같다”고 비판했다. 영국 정부 역시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어가며 가장 강력한 대러 제재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민주당 상원 지도부도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활로를 열기 위해 동맹을 팔아넘겼다고 가세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글로벌 유가 안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댄 피커링 피커링에너지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세계 디젤 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정도는 아니다”라며 공급 물량을 통상 단위인 배럴이 아닌 톤 단위로 발표한 것을 두고 “시장의 판도를 바꿀 조치라기보다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린치 에너지정책연구재단 연구원도 “미국이 러시아산 디젤을 들여오면 기존 구매처들이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해 가격은 현재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초기 공급 물량인 약 600만배럴은 미국의 1.5일치 수요이자 하루 3000만배럴에 달하는 글로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발표 직후에도 미국 내 디젤 평균 소매 가격은 갤런당 6.28달러로 역대 최고치 수준을 이어갔다.
이번 거래가 푸틴 대통령에게 전략적 승리를 안겨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클레이턴 시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에너지 전략가는 이번 거래가 “하절기용 디젤 재고를 처분하려는 러시아에 엄청난 이득”이라고 평가했다. 그레고리 브루 유라시아그룹 분석가는 “푸틴이 호의를 베푸는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에드워드 피시먼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역시 “대서양 동맹 내부의 분열을 더욱 부추기려는 공허한 약속”이라며 서방의 결속을 흔들려는 러시아의 의도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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