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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대통령, 얼굴은 마주했는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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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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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민들이 주고받는 말에 ‘제청’(提請)이란 용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법률 용어인 제청은 ‘어떤 안건을 제시하며 결정할 것을 청구한다’라는 의미다. 이를 인사(人事) 업무에 적용하면 ‘아무개를 어느 자리에 기용해 달라’고 임명권자에게 요구하는 행위가 되겠다. 우리 헌법은 국무위원(장관)의 임명은 국무총리, 감사원 감사위원의 임명은 감사원장, 대법관의 임명은 대법원장이 각각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들 가운데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속한 총리 및 감사원장의 제청권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은 지난 2025년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이 대통령 취임식 때의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은 지난 2025년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이 대통령 취임식 때의 모습. 연합뉴스

행정부와 대등한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대법원장이 비공개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대법관 후보자 이름을 건넨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물론 사전에 대법원과 청와대 간 협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협의’의 내막이 공개된 적은 없다. 군사 정권 시절엔 대법원장이 복수의 후보자 명단을 제시하면 대통령이 직접 그중에서 한 명을 낙점했다고 한다. 1988년 민주화 이후로는 단수 제청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도 있다. 전현직 대법원장들이 입을 열지 않는 한 확인은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인사 기밀로 여겨져 온 대법관 제청이 요즘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을 제청한 현직 판사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재(再)제청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헌정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에 출석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통상의 대법관 제청 절차에 관해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만나 말씀을 나누고 그 다음 절차는 서면으로 인사혁신처에 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정확히 말씀드리면 만남의 기회가 없었다”며 “(만남을) 요구했는데 안 됐다”고 덧붙였다. 대면 협의를 위해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 방문을 추진했으나, 이 대통령 측에서 거절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2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퇴임한 이흥구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희대 대법원장, 이 대통령, 이 전 대법관. 이날 조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과 차담(茶談)을 나눴으나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청와대 제공
2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퇴임한 이흥구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희대 대법원장, 이 대통령, 이 전 대법관. 이날 조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과 차담(茶談)을 나눴으나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청와대 제공

대한민국 국가 의전 서열상 대통령은 당연히 1위이고 국회의장(2위)에 이은 3위가 대법원장이다. 대통령이 정상 외교 등으로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점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나라의 ‘3인자’와 대면하는 것이 그토록 어렵다는 말인가. 마침 퇴임한 이흥구 전 대법관에 대한 훈장 수여 및 김성수 새 대법관 임명 행사가 21일 청와대에서 열려 모처럼 조 대법원장과 이 대통령이 얼굴을 마주했다고 한다.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법관 임명 제청을 놓고 대법원장과 대통령 간에 뭔가 오해가 있었다면 푸는 기회로 삼아야 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1인자’의 협량함에 혀를 내두르는 국민이 많을 것이란 우려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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