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떡 올린 전통 빙수부터 눈꽃·과일빙수까지 시대 따라 진화
한 입 가득 물면 눈처럼 곱게 간 차가운 얼음이 머리를 찌릿하게 하고, 제철 과일과 달콤한 시럽, 팥이 어우러진 맛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최근에는 사계절 빙수를 판매하는 전문점과 카페도 등장할 정도로 빙수는 남녀노소 즐기는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빙수를 즐겨 먹었을까.
◆ 빙수는 처음부터 달지는 않았다
얼음을 식생활에 활용한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에는 겨울에 얼음을 채취해 여름에 음식물을 차갑게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당시 얼음을 갈아 감미료와 함께 먹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오늘날 빙수로 이어지는 음식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개항 이후로 알려져 있다. 1897년경에는 ‘어름물(빙수)’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소개됐고, 1900년대 들어 얼음을 잘게 갈아 만든 빙수가 등장하면서 지금의 빙수와 가까운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에 실린 안효진의 ‘빙수의 근대성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1897~1945년 신문에 등장한 빙수 관련 기사는 모두 73건으로 집계됐다. 시기별로는 1890년대 1건, 1900년대 7건, 1910년대 12건, 1920년대 28건, 1930년대 24건, 1940년대 1건이다. 특히 1920~1930년대에 관련 기사가 집중되면서 당시 빙수가 대중적인 여름철 먹거리로 자리 잡아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 종로에서 시작된 빙수 열풍…서울 곳곳으로
초기 빙수 문화의 중심에는 종로가 있었다. 1903년 종로에는 ‘국영당(菊影堂)’이라는 빙수점이 문을 열었고, 5월 16일자 제국신문에는 국영당의 빙수점 개업 광고가 실렸다. 당시 빙수에는 겨울철 한강에서 채취해 저장한 천연 얼음이 사용됐다. 국영당은 빙수를 먹고 배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유행병 예방약을 넣은 빙수를 판매한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한강에서 채취한 천연빙을 사용했던 만큼 얼음의 위생 상태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기도 했다. 여름철에는 빙수와 관련한 식중독이나 전염병을 우려하는 기사도 등장했다. 1920년 콜레라가 유행했을 당시에는 신문에 냉수와 빙수를 먹지 말라는 내용의 예방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빙수의 인기는 빠르게 높아졌다. 특히 1920년대에는 서울 곳곳에 빙수점이 생겼다. 1921년 여름에는 빙수점 등 계절 영업점이 417곳에 달했고, 1923년에도 여름철 계절 영업점이 334곳에 이르렀다는 신문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빙수는 이미 서울의 대표적인 여름철 간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 빙수 토핑도 시대 따라 변신
빙수의 대중화에는 얼음을 곱게 갈 수 있는 빙삭기의 보급과 제빙 기술의 발전도 영향을 미쳤다. 1887년 일본에서 철제 빙삭기의 특허가 등장했고,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에서도 빙삭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빙삭기가 활용되면서 이전보다 고운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됐고, 바나나·오렌지·딸기 등의 맛과 향을 더한 빙수도 등장했다. 1920~1930년대 신문에 빙수 관련 기사가 집중적으로 등장한 것도 당시 빙수의 확산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팥빙수’도 이 과정에서 자리를 잡았다. 근대 빙수에는 팥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가 사용됐으며, 이후 팥에 떡과 젤리 등을 더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한국식 팥빙수가 정착한 시점은 훨씬 뒤로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연유와 초콜릿 시럽 등이 더해지면서 빙수의 맛이 다양해졌고, 1980년대에는 얼음 위에 단팥과 떡, 젤리 등을 올린 형태가 확산하면서 오늘날과 가까운 한국식 팥빙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제과점과 카페 등을 중심으로 팥빙수가 대중적인 여름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 망고·딸기부터 눈꽃빙수까지…사계절 디저트로
2000년대 이후에는 빙수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우유 등을 활용해 눈꽃처럼 부드럽게 간 얼음에 망고·딸기 등 과일과 아이스크림, 견과류 등을 곁들인 빙수가 등장하면서 빙수는 전통적인 팥빙수를 넘어 다양한 디저트 메뉴로 확장됐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는 한국형 디저트 카페가 성장하면서 눈꽃빙수 등 새로운 형태의 빙수도 주목받았다.
빙수의 변화는 여러 재료를 한데 어우러지게 먹는 한국 음식문화의 특징과도 닮아 있다. 따뜻한 밥에 나물과 고기, 달걀 등 다양한 재료를 올려 비벼 먹는 비빔밥처럼, 빙수도 얼음 위에 팥과 떡, 과일, 아이스크림, 견과류 등 다양한 재료를 얹어 한데 섞어 먹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기본 재료에 무엇을 더하느냐에 따라 맛과 형태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두 음식은 서로 다른 음식이지만 비슷한 식문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빙수 전문점과 카페, 호텔 등에서 전통적인 팥빙수부터 제철 과일과 우유얼음, 다양한 토핑을 활용한 빙수까지 선보이고 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메뉴가 등장하면서 빙수는 여름철 별미를 넘어 하나의 디저트 메뉴로 자리 잡았다.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꿔온 빙수는 다양한 재료를 한데 어우러지게 즐기는 한국 음식문화의 특징을 담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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