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역사와 명예” 외쳤지만 LIV행
3년 연속 최고 수입…그리고 찾아온 위기
오른발이 안쪽으로 90도 돌아간 채 태어났다. 의학적으로는 내반족(內反足), 신생아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선천성 기형이다. 태어난 지 불과 20분 만에 의료진이 발목뼈를 바로잡고 무릎 아래를 통째로 깁스했다. 이후에도 매주 병원을 찾아 깁스를 갈아야 했다.
하지만 오른쪽 다리는 끝내 왼쪽만큼 자라지 못했다. 왼쪽보다 약 1.5㎝ 짧았고 발목의 움직임도 제한됐다. 지금도 그는 양쪽 다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 높이가 다른 맞춤 신발을 신는다.
남들과 같은 스윙을 할 수 없어 백스윙을 짧게 끊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그 스윙으로 드라이버를 300야드 넘게 날린다.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골퍼, 욘 람(32)의 이야기다.
스페인의 두 번째 세계 1위
람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자랐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로 건너갔을 당시 영어조차 능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프채만 잡으면 얘기가 달랐다. 대학 무대에서 11승을 쓸어 담았고 세계 아마추어 랭킹 1위에 통산 60주간 이름을 올렸다.
프로에서도 거침없었다.
2020년 메모리얼 토너먼트 우승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스페인 선수로는 전설적인 골퍼 세베 발레스테로스에 이어 두 번째였다.
2021년에는 US오픈을 제패했다. 스페인 선수 최초의 US오픈 우승이었다.
2023년 4월에는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초록색 재킷을 입었다. 마스터스 우승이었다. 최종 라운드가 열린 4월 9일은 2011년 세상을 떠난 발레스테로스의 생일이었다.
스페인 골프의 전설을 동경해온 람이 마침내 그의 뒤를 잇는 순간이었다.
‘4억 달러 줘도 안 간다’더니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막대한 자금을 등에 업은 LIV 골프가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으자 람에게도 질문이 쏟아졌다.
답은 단호했다.
4억 달러를 받아도 자신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은퇴해도 가족과 행복하게 살 만큼 충분히 벌었다며 자신은 돈이 아니라 골프의 역사와 명예를 위해 뛴다고 했다.
LIV의 54홀과 컷 없는 경기 방식에도 부정적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LIV 이적설에 등장할 때마다 웃는다고까지 했다.
그랬던 람이 1년 뒤 골프계를 뒤집었다.
3억 달러짜리 이적
2023년 12월. 당시 29세였던 람은 PGA 투어를 떠나 LIV 골프로 이적했다.
정확한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소 3억 달러(약 4000억원)를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전체 계약 규모를 5억 달러 안팎으로 추산했다.
‘돈 때문에 골프를 치지 않는다’던 선수가 골프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계약 중 하나에 사인하자 비판이 쏟아졌다.
람은 큰돈을 실제로 눈앞에 두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며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포브스가 올해 6월 발표한 세계 골퍼 수입 순위에서 람은 최근 1년간 1억 1100만 달러(약 1500억원)를 벌어 1위에 올랐다.
3년 연속 골프 수입 1위였다. 최근 3년간 벌어들인 돈만 4억 달러가 넘는다.
LIV에서도 성적은 좋았다. 2024년부터 3년 연속 개인 종합 챔피언에 올랐고 첫해에만 우승 보너스로 1800만 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람이 올라탄 배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돈방석에서 채권자 명단으로
PIF가 LIV에 쏟아부은 돈만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가 넘는다. 하지만 막대한 돈으로도 기대만큼의 시청률과 방송권 수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PGA 투어와의 통합 논의마저 지지부진했다.
그리고 출범 4년 만에 리그는 휘청였다. 지난 8일 LIV는 미국 뉴저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거액의 계약을 받고 LIV로 향했던 람은 이제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가 아직 받지 못한 돈만 750만 달러. 한때 3억 달러를 보장받고 입성한 스타는 채권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파산보호 절차가 시작되면서 기존 계약이 어떤 형태로 유지될지도 불투명해졌다. 람 역시 지난 5월 자신의 처지를 두고 “빠져나갈 길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른발이 뒤집힌 채 태어난 그는 평생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같은 방식으로 스윙할 수 없자 자신만의 스윙을 만들었고 그 스윙으로 세계 1위와 마스터스 정상까지 올랐다.
돈보다 명예가 중요하다고 했던 그는 또 다른 길을 택했다.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그 길의 끝에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갈림길에 섰다. 람에게 자신만의 ‘다음 스윙’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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