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처럼 성도 짧아진 듯한 공명…친밀감·보호 본능 자극 가능성”
한국인들이 상대방에게 친밀감이나 호감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애교’가 단순히 말투나 행동을 귀엽게 바꾸는 것을 넘어 목소리의 공명 특성까지 어린아이처럼 변화시키는 현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애교를 부릴 때 목소리의 특정 주파수 대역이 높아지면서 실제보다 성도가 짧은 것처럼 들리게 되고, 이 같은 변화가 상대방에게 화자를 더 작고 어린 사람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지은 덕성여대 국어국문학전공 교수와 볼케 델워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미국 음향학회지(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에 발표했다.
애교는 성인이 상대방에게 친밀감이나 호감을 표현하기 위해 어린아이처럼 말하거나 행동하는 방식이다. K팝 아이돌이 팬들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한국 드라마에서 연인끼리 애교를 부리는 모습 등이 알려지면서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표현으로 주목받아 왔다.
해외에서는 애교에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가 없어 2021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우리말 발음 그대로 ‘aegyo’가 등재되기도 했다.
그동안 해외 연구자들은 애교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들리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목소리의 음높이나 비음, 말하는 속도 등의 특징을 살펴왔다.
이번 연구에서는 애교를 부릴 때 목소리의 공명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25~31세 한국인 남녀 12명에게 같은 문장을 애교를 넣어 읽게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눠 음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애교를 부를 때 모음의 포먼트1(F1) 주파수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포먼트는 사람이 말을 할 때 성도(목구멍에서 입까지 이어지는 소리 통로)를 통과한 목소리가 공명하면서 에너지가 집중되는 특정 주파수 대역을 말한다. 이 가운데 F1은 주로 성도의 길이에 영향을 받는다.
F1 주파수가 높아졌다는 것은 목소리의 공명 특성이 마치 성도가 짧아진 것처럼 변화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성도가 짧으면 자연스럽게 더 높은 공명, 즉 더 높은 포먼트 주파수가 생성된다”며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른의 목소리와 매우 다른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런 목소리 변화가 애교를 부리는 사람이 실제보다 더 작고 어린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효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동물의 경우 상대방을 위협할 때 후두를 낮춰 성도를 길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집을 더 크게 느끼게 하는 특성이 있는데, 인간의 애교는 이와 정반대의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델워 교수는 “우리의 연구 결과는 인간이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애교를 부리는 사람은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는 대신 더 작고 어려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처럼 작고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가 상대방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시했다.
또 포먼트 주파수를 높이는 음성 변화가 화자를 상대방에게 더 기억에 남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델워 교수는 “귀엽게 들리는 목소리는 누군가를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친밀한 사회적 관계의 시작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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