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주가 조사 응하지 않아도
확보된 자료로 감정평가 병행
모듈러 주택 활용해 공기 단축
주민 반발 등 현실적 변수 남아
일각 “일정 실현 가능성 따져야”
정부는 8·13 주택 공급대책에서 새 공급 물량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발표한 주택을 얼마나 빨리 착공할지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그동안 잇단 공급대책에도 인허가와 보상 지연으로 실제 주택 공급까지 상당한 시차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진 데다, 여당에서도 공급 목표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착공 일정과 실행계획을 내놔야 한다는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구 지정과 환경평가, 토지 조사·보상 등 순차적으로 밟던 절차를 최대한 동시에 진행해 공공택지의 ‘착공 시계’를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13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택지 조성 단계별 절차를 앞당기거나 동시에 진행하는 ‘최단기 착공모델’을 도입한다. 이에 따라 3기 신도시 기준 후보지 발표부터 주택 착공까지 평균 5년8개월 걸리던 기간을 최단 3년1개월로 줄이고, 3기 신도시와 서리풀지구 등 기존 공공택지 8만9000호의 착공 시점도 최대 1~2년 앞당길 방침이다. 앞서 9·7과 1·29 대책에서 제시한 공급 물량이 계획에 머물지 않고 실제 주택 건설로 이어지도록 행정절차와 보상, 인허가 전반을 뜯어고치는 ‘실행 속도전’에 나선 셈이다.
먼저 후보지 발표 이후 지구 지정에 걸리는 시간을 12개월에서 4개월로 8개월 줄인다. 환경·재해 관련 검토를 조기에 시작하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도 동시에 진행한다. 지구계획 수립 기간도 관련 용역과 환경영향평가를 앞당겨 24개월에서 13개월로 단축한다. 관계기관 간에 이견이 생기면 국토부 제1차관이 주재하는 ‘통합조정회의’를 통해 조정한다.
특히 토지 보상과 이주·퇴거 등 부지 확보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일 계획이다. 기존 3년8개월(44개월)에서 지구 지정 이후 2년(24개월)으로 20개월 단축한다. 지구 지정 전부터 토지 조사를 시작하고 조사와 감정평가도 함께 진행한다. 토지 소유주가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확보된 자료를 활용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토지보상법’도 개정한다. 정부는 보상 협의에 참여하는 토지주에게 협조장려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갈등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정우진 국토부 주택공급추진본부장은 “토지주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더라도 이후 감정평가나 협의매수 단계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며 “보상 협의기간은 법상 30일 이상인데 LH가 관행적으로 60일을 적용해왔다”고 말했다.
택지 조성 이후 주택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도 공사 인허가와 가설공사, 지장물 철거, 토공사 등을 최대한 동시에 진행하며 12개월에서 9개월로 줄인다. 오염토 외부 반출을 허용하고 문화재 조사가 끝난 구역부터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현장의 지연 요인도 개선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부천 대장, 인천 계양 등 3기 신도시와 서리풀지구 등 이미 발표한 공공택지 8만9000호의 착공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최대 1~2년 앞당길 수 있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올 초 1·29 공급대책에서 발표한 도심 공급 부지는 획일적인 절차 단축 대신 사업별로 발목을 잡고 있는 시설 이전과 인허가, 부지조성 절차를 병행할 계획이다. 서울 태릉 골프장(CC)도 착공 시점을 2030년에서 2029년 9월로 단축하고, 경기 과천 경마장과 옛 국군방첩사령부 부지는 시설 이전과 인허가를 병행해 2029년 12월 착공을 추진한다. 과천시가 교통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국토부는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와 의견 차이가 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는 2028년 말 착공을 목표로 잡았다. 국토부는 1만호 공급을 추진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국제업무 기능과 정주 여건을 고려하면 최대 8000호가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선 학교 등 기반시설 확충과 지역사회 수용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유감도 표명했다.
도심 내 유휴부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도 늘린다. 서울 강서구 옛 공항고와 경기 수원 수오고·권선2중, 용인 흥이중 부지에는 각각 200∼400호 규모의 공공주택을 공급해 2029년 착공할 계획이다.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와 수원 한국국토정보공사(LX) 인천경기남부지역본부 등 노후 청사에도 각각 약 200호의 청년·신혼부부 주택을 공급한다.
정부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벽체와 바닥 등 주요 구조물을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도 확대하기로 했다. LH 등 공공부문은 2027∼2030년 1만2000호를 발주해 시장 확대와 민간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 ‘범정부 주택 신속공급 점검회의’를 신설해 사업별 추진 일정과 부처 간 쟁점을 직접 관리한다. 국무조정실에 주택공급 상황판을 설치해 지구별 추진 상황을 상시 점검할 예정이다. 임기근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건은 실행”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행정절차 단축만으로 공급 시차를 모두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민 협의와 보상 등 현실적 변수를 감안하면 정부가 제시한 일정의 실현 가능성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37개월 착공’이 계획대로 실현되려면 법 개정도 뒤따라야 한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부동산법무학과)는 “정부가 계획을 수립하더라도 실제 계획대로 기간을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주민 설득기구를 만들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사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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