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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도 넘나드는 도로… “살기 위해 일하는데, 일하다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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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준·소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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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노동자 쉼터 찾아가보니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빚 쌓여
폭염수칙 준수는 딴 세상 이야기”
전국 쉼터 150곳… 접근성 등 한계

“살기 위해 일하는 건데, 오히려 일하다가 죽을 것 같다.”

온도계가 36도를 가리키는 3일 오후 1시30분, 서울 종로구의 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앞. 땀으로 흠뻑 젖어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카락에 미니 선풍기를 쐬던 김모(29)씨가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도로에서 배달업 종사자들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서울 종로구의 한 도로에서 배달업 종사자들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개인 사정으로 직장에 사표를 낸 뒤 먹고살기 위해 배달판에 뛰어든 지 2년째라는 김씨에게 가마솥더위 속 아스팔트 위는 매일 생사를 건 사투의 현장이다. 김씨는 익숙한 손짓으로 하얀 천에 물을 적신 뒤 헬멧 안에 집어넣었다. 두 번의 폭염을 견디며 터득한 그만의 생존 노하우지만, 이마저도 효력은 길어야 15분 남짓이다.

표면온도가 50도를 넘나드는 도로 위에서 기사들이 견뎌내야 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뙤약볕만이 아니다. 아스팔트 복사열에 옆 차량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열까지 더해지며 도로는 거대한 ‘움직이는 사우나’로 변한다. 김씨는 “달릴 땐 그나마 나은데 신호 전 대기선에 서면 양옆 차량 열기에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까지 타들어 가는 것 같다”며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빚이 쌓이니까 화상을 입고 탈진을 하더라도 오토바이를 타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옥외작업 단축, 35도 이상 시 무더위 시간대(오후 2∼5시) 작업 중지, 38도 이상 ‘폭염중대경보’ 발령 시에는 긴급조치 외 작업 중지를 강력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라는 거대한 야외 사우나로 내몰린 배달노동자들에게 이 같은 폭염 수칙은 딴 세상 이야기다.

 

실제 기상청은 이날 오후 4시를 기해 서울 동남·서남권과 경기 하남·오산·여주서부에 폭염중대경보를 발표했다. 폭염중대경보는 올해 신설된 최상위 폭염특보로 수도권에 폭염중대경보가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열화상 카메라로 본 서울 도심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3일 서울 용산구 남산에서 열화상 적외선 카메라로 내려다본 서울 시내가 붉게 물들어 있다. 열화상 카메라는 온도가 높을수록 붉게, 낮을수록 푸르게 표시된다. 열화상 이미지와 동일한 구도로 촬영한 일반 사진을 레이어 합성했다. 유희태 기자
열화상 카메라로 본 서울 도심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3일 서울 용산구 남산에서 열화상 적외선 카메라로 내려다본 서울 시내가 붉게 물들어 있다. 열화상 카메라는 온도가 높을수록 붉게, 낮을수록 푸르게 표시된다. 열화상 이미지와 동일한 구도로 촬영한 일반 사진을 레이어 합성했다. 유희태 기자

같은 날 강남구에서 만난 15년 차 퀵서비스 기사 이모(67)씨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고온으로 인해 앱을 종료합니다’라는 경고창이 떠 있었다.

 

이씨는 “15년 동안 오토바이를 탔지만 핸드폰이 더위를 먹어 먹통이 된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정부 폭염 수칙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지키는 거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는 일을 안 하면 당장 생활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2016년 서울에 처음 문을 연 ‘이동노동자 쉼터’는 배달노동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온몸이 땀에 절어 쉼터 문을 열면 시원한 에어컨과 생수, 물수건이 이들을 맞이한다.

 

그러나 전국 150여곳, 서울 시내 30곳에 불과해 이동 동선이 넓은 라이더들이 실제로 이용하기에는 접근성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찾아간 강남구 삼성동 이동노동자 쉼터 안에는 지친 기색의 25년차 배달 기사 정모(52)씨가 앉아 있었다. 정씨는 “자발적으로 쉬는 기사는 없다”며 “쓰러질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늘이나 쉼터로 잠깐 피하는 거지 ‘쉬고 싶어 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폭염 속 노동자 보호 조치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일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소득 보완책이 반드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전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최근 정부가 ‘폭염중대경보’를 만든 게 결국 경제활동보다 생명권을 우선해 폭염 시 외부활동을 가급적 중단하라는 취지로 만든 것 아니겠냐”며 “단 라이더의 생계를 위협해서도 안 되니, 폭염으로 인한 작업 중지 시간에 비례해 소득 지원을 하고 지원 예산 마련 방안 등을 노사정 간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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