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엄마 둔 중학교 3년 민기
친구들에 놀림·따돌림 일쑤
“무시해요” 반복된 상처 덤덤
“부모 선택할 수 있나” 서러움
탈북 엄마·조선족 아빠 둔 혜령
괴롭힘 우려 “굳이 안 알려요”
“사실 밝힌 친구, 학교서 왕따”
“난 어느 나라 사람인가” 자문도
한국 사회에서 ‘북한배경’은 소수다. 약자이기 쉽고, 때로는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된다. 북한배경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도 녹록지 않다. 북한, 중국 등 부모의 출신을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해 받아들일지, 또래와 다른 성장 과정 속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어떤 답을 찾을지 고민해야 한다. 민기(15·가명)와 혜령(18·〃)이 들려준 이야기가 그랬다.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중학교 3학년 민기는 북한이탈주민을 엄마로 둔 아이다. 엄마가 한국에 들어올 땐 민기를 임신한 채였다. 본인이 탈북민인 도현스님은 다른 탈북민들이 임시로 지낼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민기 모자는 스님의 쉼터에 머물렀다. 민기와 스님의 첫 만남이다. 민기가 5살, 2016년이었다.
스님은 쉼터 운영을 접었지만 민기는 스님 곁에 머물렀다. 엄마는 민기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님이 “정말 천방지축이네”라고만 생각했던 민기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갖고 있었다. 쉼터가 사라지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했지만 이런 민기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스님이 외면하면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방치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됐다.
‘엄마가 탈북민인 아이’, ‘엄마와 떨어져 스님과 절에서 사는 아이’.
민기는 예외적인 아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의 사실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북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탈북민 엄마를 둔 민기에게 뗄 수 없는 꼬리표였다.
“너희 엄마 북한 사람이야, 조선족이야?”
가끔 학교 앞으로 민기를 찾아온 엄마를 본 친구들이 물었다. 엄마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은 이내 놀림, 차별의 이유가 됐고 참아내기 힘든 막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 “너네 엄마 북한에서 온 거지냐?” 잘 지내던 친구들이 “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고 했다”며 등을 돌리기도 했다.
탈북민 엄마를 뒀다는 게 친구를 잃고, 놀림과 따돌림의 이유가 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화가 나고, 서럽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를 밀치고 때릴 때도 있었다. 다툼이 벌이질때마다 스님은 학교를 찾아가 고개를 숙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에서 민기는 종종 ‘문제아’ 취급을 당했다.
수업시간에 북한을 배울 때도 복잡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엄마의 고향이자 자기 정체성의 일부인 북한은 교과서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됐다. 6·25전쟁을 일으켰고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 그게 북한이었다. 친구들은 “통일은 필요 없다”고 당연한 듯 이야기했다. 북한을 두고 오가는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가 싶고, 환영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민기는 자신이 친구들 사이에서 ‘낯선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걸 5학년이 될 무렵 또렷하게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는 왜 북한에서 왔어요?”, “왜 사람들은 북한을 싫어해요?”
스님은 “놀리는 아이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위로하고, 달랬다. 민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놀림, 따돌림을 ‘아이들이 생각 없이 한 말’, ‘이번 학년 애들이 좀 유별나서’ 정도로 치부하는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기의 상처가 쉽게 아물고, 지워질 리 없었다. 스님은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스스로를 해치기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민기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안쓰러움이 깊었다.
지금도 민기는 놀림, 따돌림을 당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냥 무시해요. 그러면 그냥 안 해요.”
오랫동안 반복된 상처와 혼란에 익숙해진 것일까. 민기의 대답이 담담해서 더 안타까웠다.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한국에서 태어난 혜령은 엄마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무렵에야 알았다. 엄마와 가는 곳이 ‘탈북민 프로그램’이란 걸 알고 “엄마 북한 사람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에서도 탈북민 가정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에 살았고, 집을 오가던 엄마 친구들도 탈북민이라는 그제서야 알게 됐다. 교과서, TV 속 뉴스에서나 봤던 북한이 자기 삶의 일부라는 걸 안 건 꽤 충격적이었다. “엄마 무슨 간첩 같은 거야?”라는 얼토당토 않은 질문을 한 건 어리기도 했지만, 충격이 꽤 컸기 때문이었다.
혜령은 친구들에게 ‘엄마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란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가 엄마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을 본 뒤였다. 엄마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배경학생들은 혜령처럼 자신의 ‘북한배경’을 밝히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남북하나재단이 실시한 2024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북한 출신 배경을 ‘밝히지 않는 편’이라고 답한 비율은 62.4%로, ‘밝히는 편’(37.6%)보다 훨씬 높았다. 세부적으로는 ‘절대 밝히지 않는다’는 응답이 34.4%로 가장 많았다. 북한배경을 밝히지 않는 이유로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어서’란 응답이 63.4%였고, ‘차별을 받을까 봐’(15.2%),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8.6%) 등이 뒤를 이었다. 국내에서 태어난 북한배경학생 역시 부모가 북한출신이라는 사실을 자기정체성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봐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엄마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혜령은 집안 분위기나 엄마의 훈육 방식이 여느 집이나 친구들 엄마와는 다르다는 걸 의식하게 됐다. 혜령이 보기에 엄마는 ‘북한식’이다. 밥 먹을 때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과 같은 식사예절 등 북한에서 익숙했던 기준을 강조한다. 친구들은 고민을 말하면 엄마가 일단 공감을 해준다고들 하는 데 자기 엄마는 “네가 이겨내야지”, “그렇게 해야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이란 식의 반응이었다. 한국의 대중문화나 역사 등 친구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는 것들을 엄마는 알지 못했다.
북한식에 익숙한 엄마, 중국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 아빠를 둔 한국 아이 혜령은 언젠가부터 ‘난 어느 나라 사람일까’라고 자문하게 됐다.
“부모님은 당연히 제가 한국인이라고 말하지만 전 지금도 제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북한인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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