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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포기한 'IQ 138' 전인지, 18세에 소녀 가장으로… 세계가 사랑한 메이저 퀸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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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기자 rewonv@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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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영재에서 메이저 퀸으로
반딧불처럼 세상을 밝힌 전인지

2015년 여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시골길. US여자오픈 3라운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스물한 살 전인지의 눈에 수천 마리 반딧불이가 들어왔다. 어두운 숲을 가득 메운 불빛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빛이 돼야지.”

 

2015년 US여자오픈 기간 펜실베이니아의 숲에서 반딧불이를 바라보던 전인지의 일화를 AI로 구현한 이미지.
2015년 US여자오픈 기간 펜실베이니아의 숲에서 반딧불이를 바라보던 전인지의 일화를 AI로 구현한 이미지. 

 

그 다짐은 말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전인지는 4타 차를 뒤집고 US여자오픈 정상에 섰다. 한국 골프사에 ‘메이저 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메이저 퀸’의 출발점은 의외로 골프장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IQ 138의 어린 전인지는 또래가 배우지도 않은 미적분을 풀어 수학경시대회 대상을 받았다. 지역 영재교육원 선발시험도 최종 관문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골프를 하겠다고 하니 학교가 먼저 말렸다. 교감 선생님은 어린 전인지를 앉혀두고 물었다. “시험 한 번만 더 보면 되는데, 왜 그걸 두고 운동을 하려고 해. 너 정말 골프를 할 거야?”

 

어린 전인지는 수학도 골프도 다 좋았다. 그래도 더 끌린 쪽은 골프였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 전종진씨도 “공부보다 골프를 시키고 싶다”며 딸의 손에 골프채를 쥐여줬다. 그렇게 전인지는 가장 좋아하던 수학을 내려놓았다.

 

US여자오픈 우승 후 귀국한 전인지가 아버지 전종진씨와 포옹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US여자오픈 우승 후 귀국한 전인지가 아버지 전종진씨와 포옹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연 1억원의 무게…태극마크를 내려놓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골프는 흔히 ‘있는 집’ 운동으로 통한다. 훈련비와 전지훈련, 대회 출전 비용까지 합치면 연간 1억원이 필요하다.

 

전인지의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하던 무역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아버지는 생업을 접고 딸의 골프백을 멨고,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꾸려 생계를 책임졌다. 가족 모두가 전인지의 꿈에 삶을 걸었다.

 

전인지도 가족의 기대에 온 힘을 다했다. 그는 처음부터 천재형 선수는 아니었다.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해 연습장에서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 다섯 시간 넘게 연습을 반복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쯤 비로소 공이 맞기 시작했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전인지는 충남 서산과 제주, 전남 보성·함평으로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골프를 배웠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됐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태극마크를 달았다. 군산 작은 식당집 딸이 국가대표가 됐다.

 

하지만 태극마크는 오래 품지 못했다. 가족이 짊어진 무게를 전인지는 알고 있었다. 2012년 그는 태극마크를 스스로 반납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열여덟 살, 하루라도 빨리 상금을 벌어야 했다. 훗날 그는 KLPGA 투어 시상식에서 “가족의 희생을 잘 알고 있다. 이 상은 가족에게 바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인지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인지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 시즌 韓·美·日 메이저 제패…세계가 주목했다

 

결단은 곧 결실로 돌아왔다. 2013년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2015년 전인지는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섰다. 5월 JLPGA 살롱파스컵, 7월 LPGA US여자오픈, 같은 달 KLPGA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을 차례대로 제패했다. 한 시즌에 한국·미국·일본 세 나라 메이저를 모두 석권한 것은 전인지가 처음이었다.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전인지 SNS 캡처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전인지 SNS 캡처

 

이후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 2022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까지 품으며 LPGA 통산 4승 가운데 3승을 메이저에서 거뒀다. ‘메이저 퀸’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전인지의 트레이드마크인 ‘덤보’ 인형 헤드커버가 골프백에 꽂혀 있다. 전인지 SNS 캡처
전인지의 트레이드마크인 ‘덤보’ 인형 헤드커버가 골프백에 꽂혀 있다. 전인지 SNS 캡처

 

그녀의 성적이 ‘메이저 퀸’을 만들었다면 성격은 또 다른 별명을 만들었다. ‘플라잉 덤보’다. 만화 속 큰 귀 때문이 아니라 궁금한 것이 생기면 끝까지 묻고 배우려는 성격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LPGA 무대에서 활약이 이어지며 ‘플라잉 덤보’라는 애칭으로 자리 잡았고, 친근한 성격 덕분에 팬들의 사랑도 받았다.

 

2026년 US여자오픈 현장에서 전인지(오른쪽 두 번째)와 스윙 코치 김송희 프로(맨 오른쪽)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인지 SNS 캡처
2026년 US여자오픈 현장에서 전인지(오른쪽 두 번째)와 스윙 코치 김송희 프로(맨 오른쪽)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인지 SNS 캡처

 

3년간 단 한 번의 톱10…‘덤보’의 침묵과 부활

 

하지만 늘 하늘을 날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허리와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성적도 따라오지 않았다.

 

2022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이후 전인지의 이름은 우승자 명단에서 사라졌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출전한 59개 대회에서 기록한 톱10은 단 한 번뿐이었다. 한때 세계 무대를 호령했던 ‘메이저 퀸’도 긴 침묵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클럽을 놓지 않았다. 2024년 말 전인지는 변화를 선택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코치와 결별하고 김송희 코치, 조수경 박사와 손잡고 재기를 준비했다. 성적이 곧바로 따라오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과정을 견뎠다. 올 시즌 개막도 3월까지 미루며 베트남에서 스윙을 재정비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겨울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변화는 수치로 나타났다. 평균 드라이버 거리가 10야드 이상 늘었다. 정확도까지 향상되면서 경기 운영에도 여유가 생겼다. 전인지는 “새로운 코치와 호흡을 맞춘 후 10년 가까이 고생했던 허리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밝혔다.

 

침묵은 올봄 끝이 났다. 3월 포드 챔피언십에서 2년 7개월 만에 톱10(단독 5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달 초 US여자오픈에서는 한때 단독 선두까지 치고 올라갔다. 11년 전 비회원 신분으로 우승했던 바로 그 대회였다.

 

최종 순위는 4위. 정상은 놓쳤지만,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전인지가 돌아왔다.”

 

하지만 본인은 담담했다.

 

“인생에 늘 오르막, 내리막이 있듯이 지난 시간도 그저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지금 모든 게 완벽하게 건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누구나 겪는 삶의 기복에서 이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인지가 자신의 교육재단이 운영하는 랭커스터 주니어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 전인지 SNS 캡처
전인지가 자신의 교육재단이 운영하는 랭커스터 주니어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한 모습. 전인지 SNS 캡처

 

미국 현지도 주목한 ‘반딧불 장학금’의 선한 영향력

 

전인지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성적만이 아니다.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인연을 맺은 랭커스터 컨트리클럽의 제안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교육재단을 세워 매년 기금을 내고 있다. 10여 년 전 펜실베이니아에서 본 반딧불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제 꿈을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저도 랭커스터 사람들에게 작은 빛이 되고 싶었어요.”

 

첫해 1만달러 기부로 시작한 인연은 어느덧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선행은 골프장 밖에서도 계속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사비로 마스크 2만장을 사 미국에 보냈다. 그는 오랜 기부와 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2023년 LPGA가 신설한 ‘벨로시티 글로벌 임팩트 어워드’의 초대 수상자가 됐다. 

 

전인지의 선행은 개인을 넘어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때 미국 골프계 일각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강세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전인지의 꾸준한 기부와 지역사회 활동은 이러한 선입견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현지 관계자는 그를 두고 “단순한 골프 선수를 넘어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식을 바꾼 선수”라고 평가했다.

 

전인지가 2022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고 미소 짓고 있다. 전인지 SNS 캡처
전인지가 2022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고 미소 짓고 있다. 전인지 SNS 캡처

 

“아, 크게 되겠구나”…27년 차 베테랑 캐스터의 기억

 

2000년부터 골프 해설을 맡아온 이원정 캐스터는 전인지의 고등학생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골프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어요. ‘크게 되겠구나’ 확신을 준 선수였죠.”

 

그는 전인지가 한국 여자골프 전성기를 이끈 대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박인비 선수가 세계를 제패한 뒤 박성현, 김세영, 전인지 선수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여자골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LPGA 통산 4승 중 3승이 메이저일 정도로 큰 무대에 강한 선수죠. 개인적으로는 한국·미국·일본의 내셔널 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점도 전인지 선수의 대단한 업적이라고 봅니다.”

 

최근 부활의 배경으로는 ‘동기부여’를 꼽았다.

 

“전인지는 기술보다 멘털이 상징인 선수입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새로운 동기부여가 생긴 것 같아요. 동기부여는 열정을 성과로 바꾸는 가장 강한 엔진입니다. 슬럼프와 부상을 이겨내는 회복탄력성도 생겼고 결정적 순간의 수행 능력도 좋아지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 캐스터는 이어 “실력과 인품을 모두 갖춘 선수가 어려운 시기를 성숙하게 버텨내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캐스터로서도, 팬으로서도 정말 반갑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이제 전인지의 다음 목표를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고 말한다. LPGA 5대 메이저 중 단 하나만 더 우승하면 한국 여자골프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전인지는 이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룬다면 정말 특별한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인지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 기록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다.

 

‘즐겁고 신나게 몰입하기.’ 신인 시절부터 야디지북에 적어온 문장이다.

 

수학 영재였던 소녀, 가족을 위해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던 열여덟 살의 골퍼 그리고 누군가의 빛이 되기로 한 챔피언.

 

전인지는 늘 자신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11년 전 펜실베이니아 숲속 반딧불이를 바라보며 품었던 ‘누군가의 빛이 되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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