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설강화’ 이어 또 논란, 반복된 역사 왜곡
‘5·18’·‘박종철 열사’를 마케팅 소재로…엇나간 역사 인식
최근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 부인’부터 스타벅스 마케팅까지 왜곡된 역사 인식 논란이 잇따르면서, 과거부터 반복돼 온 역사 감수성 부재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논란은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즉위식 장면에서 불거졌다. 이안대군은 제후국 격식의 ‘구류면류관’을 착용했고 신하들은 몸을 숙이며 “천천세”를 외쳤다. 일부 시청자들은 대한민국을 중국의 제후국처럼 묘사했다며 반발하면서 이안대군이 황제 격식의 ‘십이면류관’을 쓰고 신하들은 “만세”라고 외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중국 국경 내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를 중국으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OTT 디즈니+는 해당 장면의 음성과 자막을 수정했고 완주문화관광재단은 예정됐던 ‘21세기 대군 스토리 투어’ 운영을 취소했다.
배우와 제작진들은 잇따라 사과에 나섰다. 성희주 역을 연기한 배우 아이유는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역사 고증 문제에 있어 더 깊이 고민하지 않고 연기에 임한 점 변명의 여지 없이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전했다. 이안대군 역을 연기한 배우 변우석도 “작품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의미가 무엇이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적은 사과문을 개인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과 극본을 쓴 유지원 작가도 뒤이어 사과를 내놓았다.
◆ 판타지 사극의 그림자...반복된 역사 왜곡 논란
문제는 이 같은 역사 왜곡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다. 2021년 방영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대표적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과도하게 중국식 소품과 음식을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작진의 해명에도 역사 왜곡이라는 항의가 이어지자 ‘조선구마사’는 방영 2회 만에 막을 내렸다.
같은 해 방영한 JTBC 드라마 ‘설강화’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이 드라마는 1987년 민주화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간첩인 남자 주인공이 운동권으로 오해를 받는 설정이 등장한다. 간첩 세력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다룬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이후 광고주들의 광고와 협찬 중단 요청까지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현대 사극에서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이유로 ‘판타지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철저한 고증을 중시하던 정통 사극의 빈자리를 판타지물이 채우면서 허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이유로 고증에 대한 강박이 사라진 것 같다”며 “하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설정을 가져오는 이상 제작진이 명확한 역사 인식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역사 고증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유명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자신의 SNS에서 “배우들의 출연료는 몇억을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역사 고증 비용은 몇십만으로 왜 퉁치려 하느냐”며 지적 후 “역사물 고증 연구소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다.
◆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파문…7년 전 무신사 광고 재조명
스타벅스코리아도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탱크데이’ 이벤트를 소개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벤트 홍보물에는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 등의 문구가 포함됐다. 이를 두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 진압에 동원된 탱크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기관이 했던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발언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스타벅스를 직격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에 분노한다”며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5·18기념재단도 성명을 내고 “반인권적·반민주적 국가폭력의 상징어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상업적 마케팅 언어로 사용한 것은 기업의 역사 인식과 사회적 책임 의식의 심각한 결여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의 이윤 추구와 마케팅의 자유도 공동체의 비극적 역사 위에서 행사될 수는 없다”며 “일상적인 공간과 상업적 영역에서 역사적 상징과 아픔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가볍게 소비하고 희화화하는 무감각한 태도야말로 역사의 진실을 훼손하고 왜곡을 재생산하는 가장 위험한 독버섯이다”라고 비판했다.
‘탱크데이’ 홍보가 사회적으로 뭇매를 맞으면서 과거 박종철 열사 희화화 논란이 일었던 무신사 광고도 이 대통령의 SNS 언급 이후 재조명되고 있다. 7년 전 무신사는 양말 광고에 ‘속건성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삽입했다가 박종철 열사를 희화화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무신사는 20일 사과문을 다시 게재했다. 2019년 사건이 발생한 직후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아 사과했다고 밝힌 무신사는 “7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내부 프로세스의 부재와 경솔한 판단이 남긴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고 있다”며 “다시 한번 박종철 열사님과 유가족 여러분, (사)박종철기념사업회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분들, 그리고 무신사에 실망하셨을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전했다.
이 같은 논란에 이은하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는 사람마다 홍보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도 5·18을 희화화한 것은 일단 잘못했다”면서 “이런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외부인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도 “자신의 정치색이나 특정 이념을 프로모션에 드러내고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하며 ”한 사람이 그런 프로모션 기획안을 냈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부분이 의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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